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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5년 만에 ‘성 토터링엄의 날’ 막아낼 수 있을까
박강수 -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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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런던 축구팬들의 자존심 대결을 상징하는 이 날이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4위 경쟁의 키를 쥐게 됐다.
성 토터링엄의 날(St. Totteringham’s Day).
영국 런던 북부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각자의 안방 구장을 둔 아스널과 토트넘은 영국에서도 가장 극성맞은 앙숙이다. 자신들의 승리만큼이나 상대의 몰락을 바라며 100년 넘게 으르렁대 왔다. 성 토터링엄의 날은 그 부산물로, 아스널이 토트넘보다 높은 리그 순위를 확정짓는 날을 기리는 아스널 팬들의 명절이다. 2002년께 한 아스널 팬이 개념을 정립하며 시작됐다. 토트넘(tottenham)에 ‘위태롭다’는 뜻의 형용사 ‘토터링(tottering)’을 결합한 조어다.
오랫동안 성 토터링엄의 날은 아스널 팬덤의 연례 행사였다. 아스널은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95∼96시즌부터 무려 21시즌 동안 토트넘보다 리그 순위가 높았다. 3∼5월 어느 날 결정되는지 차이가 있을 뿐 아스널 팬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15∼16시즌에는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이미 강등이 확정된 뉴캐슬을 만난 토트넘이 충격패를 당하면서 2위 자리를 아스널에 내주고 스스로 성 토터링엄의 날을 완성하기도 했다. 아스널 팬들은 성 토터링엄의 날에 이렇게 노래한다. “또 이렇게 됐네, 또 이렇게 됐어, 토트넘아.”
성 토터링엄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아스널팬이 제작한 케이크. 레딧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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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7 시즌 토트넘이 아스널보다 높은 순위를 확정짓는 날 관중석에 포착된 토트넘 팬의 현수막. “2017년 성 토터링엄의 날 행사 취소됨”이라고 써 있다. <미러 풋볼> 트위터 갈무리
그러나 15∼16시즌의 극적인 자멸은 사실, 토트넘과 아스널 사이 역전이 임박했음을 예단한 징조였다. 바로 다음 시즌 손흥민과 해리 케인, 크리스티안 에릭센, 델레 알리의 공격 편대 ‘DESK’ 조합을 앞세운 토트넘은 리그 2위로 도약하며 5위 아스널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아스널 팬들의 크리스마스를 취소시켰다. 이후 지금까지 성 토터링엄의 날은 없었다. 지난 5시즌 간 토트넘은 어떻게 해서든 아스널보다는 높은 순위를 사수하며 굴욕의 날이 돌아오는 일을 저지해 왔다.
이번 시즌 북런던은 다시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됐다. 지난 주말 치러진 리그 34라운드에서 아스널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꺾고 4위(승점 60)에 올랐고 토트넘은 브렌트포드와 0-0으로 비기면서 5위(승점 58)로 내려앉았다. 토트넘은 지난 시즌과 18∼19시즌 승점 1점차로 간신히 아스널보다 앞선 성적을 냈다. 5경기가 남은 현재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걸린 4위 자리를 두고 맞붙은 두 팀의 순위는 매 라운드 요동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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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토트넘 핫스퍼)이 지난 3일 뉴캐슬과 경기에서 공을 들고 서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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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의 마르틴 외데고르(왼쪽)와 부카요 사카. 런던/AP 연합뉴스
최대 승부처는 다음 달 13일(한국시각)로 예정된 맞대결 ‘북런던 더비’다. 북런던 더비 최다 득점자 해리 케인(11골), 최근 아스널전 4경기 3골의 손흥민이 있는 데다 2015년 이후 안방에서 아스널에 진 적이 없는 토트넘으로서는 희망을 걸어볼 법하다. 21년 만에 성 토터링엄의 날을 끊어낸 것도 2017년 5월 안방에서 치른 아스널전이었다. 다만 최근 처진 분위기와 더비 전 리버풀 방문 경기는 변수다. 토트넘은 5년 만의 성 토터링엄의 날을 막아낼 수 있을까.
토트넘은 오는 30일 레스터시티와, 아스널은 다음 달 2일 웨스트햄과 일전을 통해 4위 경쟁을 이어간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