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제 김지섭) [WEEKLY BIZ] 국가부도의 날...약한 나라들이 소리없이 쓰러진다 ... [2022-04-30]

by viemysogno posted Apr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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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국가부도의 날...약한 나라들이 소리없이 쓰러진다

 

 

 

[Cover Story] 개도국 41곳 연쇄 디폴트 위기

 

김지섭 기자

입력 2022.04.28 21:30

 

 

인도양 섬나라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는 요즘 반(反)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리케이드가 세워진 거리 곳곳에서 시민들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채 경찰과 대치 중이다. 대통령 집무실 앞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시위대의 텐트촌이 됐다. 최루탄 가스로 뿌옇게 덮인 도심에선 시위대를 향한 물대포가 쏟아진다. 스리랑카가 민중 봉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은 팬데믹 사태로 주 수익원인 관광 수입이 끊긴 후 경제난에 허덕이다 최근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국가 부도가 났기 때문이다. 외화 부족으로 해외에서 물자를 사올 수 없게 되자 스리랑카 국민들은 식량과 의약품,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스리랑카뿐만이 아니다. 파키스탄, 이집트, 튀니지 등 경제 체력이 취약한 전 세계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세계 경제에 날아든 매서운 ‘강펀치’ 세례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대고 있다. 팬데믹 사태를 거쳐 작년부터 시작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이를 잡기 위한 주요국의 금리 인상 행렬,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숨 고를 새 없이 이어지면서 개도국들은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 빠진 상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개도국을 비롯한 저소득 국가 73국 중 56%인 41국이 심각한 부채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했다. WEEKLY BIZ가 개도국을 휩쓸고 있는 디폴트 위기의 배경과 향후 전망 등을 분석했다.

 

 

 

 

디폴트(채무불이행)와 인플레이션으로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진 스리랑카에서는 연일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수도 콜롬보의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스리랑카 여성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디폴트(채무불이행)와 인플레이션으로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진 스리랑카에서는 연일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수도 콜롬보의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스리랑카 여성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연쇄 디폴트 위험 커지는 개도국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로 고통받는 개도국은 특정 지역에 국한돼 있지 않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에 걸쳐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난 12일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를 비롯해 파키스탄, 이집트, 튀니지, 페루, 엘살바도르, 가나, 에티오피아 등을 조만간 백기(白旗)를 들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 에콰도르와 레바논, 잠비아 등은 이미 IMF에 구제 요청을 하고, 부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마르첼로 에스테바오 세계은행(WB) 글로벌 디렉터는 “채무 상환을 지속할 수 없는 개도국이 연내 12국가량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개도국과는 결이 다르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강력한 경제·금융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역시 미국 등 서방 진영 은행들로부터 달러 송금을 거부당하면서 1918년 이후 104년 만에 디폴트 위기에 놓였다. 러시아는 최근 달러 송금에 실패하자 루블화로 이자를 갚으려 했으나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 감독기구는 러시아가 채무 변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IMF가 팬데믹 기간 ‘국제 채무상환 유예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 개도국 및 저소득 국가 73국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41국(56%)이 사실상 디폴트 초입에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만 해도 해당 국가들 중 빚을 갚지 못해 허덕이는 국가들의 비율이 27%였는데 팬데믹 이후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세계은행은 73개의 개도국이 올 한 해 해외 채권자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350억달러(약 43조39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20년과 비교해 2년 만에 109억달러(약 13조5100억원) 늘었다.

 

디폴트 위험이 고조되면서 주요 개도국들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개도국들은 브라질,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신흥국과 달리 자국 내에서 충당할 수 있는 자원이 거의 없어서 가격이 급등한 원자재나 주요 물품을 외국에서 들여와야 한다. 여기에 통화가치마저 크게 떨어진 탓에 생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의 지난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각각 18.7%, 11.9% 상승했고, 튀니지와 이집트도 7~8%대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에티오피아에서는 33.6%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나타났고, 가나와 페루도 각각 15.7%, 6.8%의 상승률을 보였다. 베네수엘라와 레바논에서는 무려 200%가 넘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들 국가에서는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야당이 물가 폭등과 경제 파탄의 책임을 물어 지난 9일 임란 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시켰다. 이라크·이집트 등 이슬람권에서는 금식 기간인 라마단 전부터 식료품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페루에선 연료·비료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트럭 운전기사와 농부들이 고속도로 봉쇄 시위를 벌이고, 정부는 시위를 막기 위해 통행금지령까지 내리며 대치 중이다. 튀니지에선 상점 식료품 진열대에서 설탕, 밀가루 등이 동났고 정부는 공무원 임금 지급을 미루는 형편이다. 영국 경제 분석 기관인 캐피털 이코노믹스(CE)의 윌리엄 잭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개도국일수록 가계 소비에서 식료품과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민생이 파탄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로 빚잔치 벌이다 팬데믹 충격

 

개도국의 디폴트 위기가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다. 팬데믹 이전 10년여간 저금리·저물가가 이어지자 개도국들은 무리한 인프라 투자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며 대외 부채를 꾸준히 늘려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026달러(약 127만원)에서 1만2475달러(약 1543만원) 사이에 있는 ‘중소득(middle income) 국가’ 110국의 2020년 대외 부채는 8조5231억9290만달러(약 1경541조원)에 달한다. 5조5651억9500만달러(약 6883조원)였던 2012년 대비 53%나 늘었다. 해당 국가들의 수출액 대비 대외 부채 비율도 2012년 82.5%에서 2020년 122.9%로 급증했다.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에 비해 너무 많은 빚을 졌다는 의미다. 개도국의 GDP(국내총생산)에서 기업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도 꾸준히 증가해 2000년 51.3%에서 2020년 119.8%로 2배 넘게 불어났다. 레베카 그린스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끊임없는 위기로 중·저소득 국가들은 지난 수년간 재정 여유는 줄고, 부채 부담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했다.

 

 

빚더미에 대한 경보음이 울리는 시점에 터진 팬데믹 사태는 개도국들을 더욱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정부와 기업이 경기 침체와 도산을 막기 위해 무리해서 채권을 발행했고, 감당 못 할 부채는 끝도 없이 증가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개도국(신흥국 및 저소득국 포함)들의 지난 2020년과 2021년 국채 및 회사채 발행 규모는 각각 3000억달러(약 370조원) 안팎으로 1600억달러(약 197조원) 수준이던 2018년과 비교해 2배 가까이 불어난 상태다. 세계은행은 지난 1월 발표한 경제 전망에서 “전체 저소득 국가의 약 60%가 채무 재조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나마 팬데믹 이후 주요 20국(G20)이 개도국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20년 5~12월 사이에 개도국이 갚아야 할 빚의 만기를 작년 말까지 연장해줬기에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이 조치로 42국이 127억달러(15조7000억원)에 달하는 채무 상환 유예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다시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국의 금리 인상은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디폴트 도미노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도 주요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개도국들은 큰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지난 1993~1994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2년여 만에 3%포인트 가까이 올리자(3.0%→5.8%) 당시 경상수지 적자에 허덕이던 멕시코는 디폴트를 선언하고, IMF에 손을 벌렸다. 멕시코 위기의 여진은 중남미 전역으로 퍼졌고, 결국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까지 이어졌다. 영국 더타임스는 “외국 자본과 달러 부채 의존도가 높은 개도국은 금리 인상이 치명적”이라며 “이들은 미 연준과 인플레이션 간 싸움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디폴트 도미노, 지정학적 위기 부른다

 

세계 경제에서 개도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보니 이들의 경제 위기를 개별 국가들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연쇄 디폴트가 일어나더라도 전 세계 소비나 금융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상위 20국이 전 세계 GDP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70여 개도국의 비중은 2%도 되지 않는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대부분의 개도국은 자원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인의 일상과 생산 및 공급 체계에 당장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마르첼로 에스테바오 WB 글로벌 디렉터는 “30년래 최대 규모의 신흥국 연쇄 디폴트가 벌어지겠지만, 1980년대 남미 외채 위기 같은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더라도 디폴트가 발생한 개도국과 활발히 금융 거래를 하는 인접국이나 해당 지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통상 디폴트가 발생하면 채권자와 협상을 거쳐 채무 일부를 탕감하는 절차를 밟기 때문이다.

 

 

또 현재 개도국 연쇄 디폴트 위기가 인플레이션과 결합돼 있어 자칫 2010년 튀니지를 기점으로 확산됐던 ‘아랍의 봄’같은 지정학적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영국 투자회사 애버딘의 빅터 자보 매니저는 “에너지와 식량 가격 인상이 개도국들의 사회 불안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아랍의 봄이 식량 가격 급등에서 촉발됐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연쇄 디폴트 위기를 바라볼 때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2010년대 들어 ‘일대일로 (一帶一路·중국의 육해상 실크로드)’라는 이름의 경제 영토 확장 프로젝트를 펼쳐 왔는데, 이 과정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대륙의 수많은 저개발 국가를 포섭했다. 작년 상반기 기준 중국과 일대일로 업무협약(MOU)을 맺은 140국 중에는 최근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를 비롯해 파키스탄, 이집트, 잠비아, 레바논, 라오스,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 부채 위기를 겪는 국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해당 국가에는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돼 철도와 공항, 항만 등 교통·물류 인프라와 댐이나 발전소 등 에너지 기반 시설 등이 건설됐다. 일대일로 프로젝트 수는 2020년 상반기 기준 1824건, 투입 금액은 2조3000억달러(약 2844조원)에 달한다.

 

 

자금이 부족한 개도국 입장에서는 중국 돈으로 국토 개발을 하니 나쁠 것이 없었다. 선진국과 달리 돈을 주면서 부패 방지 방안 마련, 민주화 등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이들이 기꺼이 중국과 손을 잡은 이유다. 하지만 중국은 돈을 빌려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개발 사업에 대한 시공 및 운영권을 독식했고 이자도 높게 받으며 잇속을 챙겼다.

 

 

경제 기반이 약한 나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자금을 높은 이자로 빌려 쓰다 보니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중국은 이를 볼모로 해당 국가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른바 ‘부채의 덫(debt-trap)’ 전략이다. 스리랑카·캄보디아·우간다·이집트 등이 모두 이런 식으로 중국 돈을 빌려 썼다가 주요 자산에 대한 운영·소유권을 잃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채무 상환 유예 대상이 된 73국의 대외 부채 중 중국 자금 비율은 작년 기준 18%에 달한다. 2006년(2%)의 9배다. 같은 기간 73국의 민간 부문 대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도 3%에서 11%로 증가했다.

 

 

문제는 중국에 빚을 많이 진 개도국들이 줄줄이 부도날 경우 미·중 간 패권 경쟁에 불을 붙이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군사·안보적 요충지가 많은 일대일로 편입 국가들이 디폴트에 빠질 경우 중국이 채무 조정 등을 명분으로 영향력 확대에 나서고,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등 서방 진영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무역이 쇠퇴하고 자원 민족주의가 부상한다는 시나리오다. 가뜩이나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유주의 대 비자유주의 진영 간 대립이 격화하는 시점이어서 이런 시나리오에 설득력을 더한다. NH투자증권 신환종 FICC(채권·외환·파생상품) 리서치센터장은 “디폴트로 개도국들의 친중 정부가 몰락하고 친서방 세력이 집권할 수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열강들 간 세력 다툼이 일어나 세계 경제에 긴장감을 불러올 수 있다”며 “디폴트 도미노를 단순히 금융시장에 끼칠 단기적 영향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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