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기획] IRA 후폭풍… 韓 관련기업 미국행 러시
배터리 소재기업 현지 투자 확대
정부 지원안, 美 10분의 1 밑돌아
K-배터리 밸류체인 이탈 가속도
박한나 기자 입력: 2022-08-31 16:39
솔루스첨단소재의 북미 생산기지인 캐나다 퀘벡주 공장 부지. <솔루스첨단소재>
LG화학, 포스코케미칼 등 주요 국내 배터리 소재업체들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 현지 투자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완제품에 이어 부품·소재로 이어지는 'K-배터리' 벨류체인이 미국으로 이탈하는 등 첨단산업이 후폭풍을 맞고 있다.
31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계열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일본 혼다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북미 투자를 확대하기로 하자 현지 투자 시기를 앞당겨야 할지를 검토 중이다. LG화학은 당초 2025년말까지 북미에 양극재 공장을 신설할 예정이었는데, LG에너지솔루션과 혼다 간 합작공장이 같은 해 가동할 예정이라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앞서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비엠, 롯데케미칼, 솔루스첨단소재 등 배터리 소재업체들은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확정했으며, SKC는 이미 공장부지를 물색 중이다. 이들 업체는 IRA 시행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당초 예정보다 더 빨리 공장을 짓는 것을 목표로 현지 주정부 등과 인센티브 협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서명한 IRA에 따르면 배터리에 들어가는 흑연, 리튬, 니켈 등 광물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되거나, 북미 지역에서 재활용된 광물이어야 미국 정부로부터 최대 지원금의 절반(3750달러)을 받을 수 있다. 나머지 3750달러는 양극재, 음극재, 솔벤트, 첨가제, 전해질 등 배터리 핵심 부품(소재)의 가공을 북미 지역에서 해야 받는다.
광물 보조금 조건 비율은 내년 40%로 시작해 2027년까지 80%로 늘려야 한다. 배터리 부품(소재) 조건 비율도 2023년 50%에서 2024~2025년에는 60%, 2026년 70%, 2027년 80%, 2028년 90%, 그 이후엔 100%까지 미국 내 제조 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런 목표에 맞추려면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제조업체에 동반해 배터리 소재 기업들도 현지 진출에 속도를 내야 한다. 배터리 제조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GM, 스텔란티스, 혼다와 함께 북미 지역에만 5개의 합작공장을 건설 중이며, 미국 미시간주 단독공장을 증설하는 한편 애리조나주에 원통형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SK온 역시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와 총 3개의 합작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 설립을 계기로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북미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화솔루션 등 국내 태양광 업체들도 미국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는 등 IRA에 따른 현지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국내 업체들의 미국 투자 확대가 예견된 상황에서, IRA가 국내 배터리·태양광 벨류체인의 이탈을 재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탈탄소와 풍력·태양광·배터리·그린수소(탄소 발생 없이 생산된 수소) 산업의 미국 내 생산 확대 등을 위해 2030년까지 총 3740억 달러(약 505조원) 규모의 파격적인 '당근' 지원책도 넣어놨다. 지난 30일 우리 정부가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에 담긴 배터리 지원안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5개 분야를 포괄해 4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우리 지원 금액은 미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 진출이 우리 기업 입장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서 "미국의 고환율과 높은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전후방 산업과 밀접하게 비즈니스를 하면서 공급망 관리를 할 수 있는 긍정적 기회가 크기 때문에 장기적 안목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미국에는 우리나라 소재 기업인 에코프로비엠이나 포스코케미칼 같이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IRA로 전기차 보조금 7500달러의 큰 금액을 제시한 것은 미국 진출을 법으로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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