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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공기살인’] ③ 피해자만 남은 ‘가습기 참사’, 돌파구는 없나?

 

 

 

입력 2022.09.03 (08:00)취재K

 

 

 

 

 

 

이 기사를 읽기 시작하면서 "아직도?"라는 의문이 든 분들 계실 겁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이 참사, 드러난 지 벌써 11년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참사는 여전히 해결된 게 없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공기 살인' 가습기살균제 이야기입니다.

 

 

◆ [추적 '공기살인'] 글 싣는 순서

①'아이에게도 안심'…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② 옥시 본사에 묻다, "책임지겠습니까?"

③ 피해자만 남은 '가습기 참사', 돌파구는 없나?

 

 

 

 

■ 7년 만에 다시 만난 피해자

 

가습기 살균제를 처음 취재한 건 7년 전입니다. 사회부 막내 시절, 옥시 사무실 앞에 피해자들이 모였던 날입니다.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모두를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철저한 수사와 해당 기업들의 사과도 촉구했습니다. '과실치사 혐의'로 막 가습기 살균제 기업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현장에는 산소통을 메고 나왔던 안은주 씨가 있었습니다. 당시 은주 씨는 KBS 취재진에게 "폐 이식을 받는 데 드는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해 모든 가족이 다 빚쟁이가 되고 있다"고 울먹였습니다.

 

배구선수 출신인 은주 씨는 투병 전 경남 밀양에서 배구코치와 심판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은주 씨는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사용한 뒤 원인 미상의 폐 질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5년과 2019년 2번에 걸쳐 폐 이식을 받았습니다. 투병 기간만 12년, 특별법이 제정됐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로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 배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은주 씨를 올해 다시 만났습니다. 은주 씨의 상태는 7년 전보다 악화돼 있었습니다.

 

2차 폐 이식 후 2021년 잠시 산책하러 외출한 뒤로는 병실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았고, 직접 인터뷰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KBS 취재진은 은주 씨 언니를 통해 은주 씨의 현재 상태를 들을 수 있었고, 병상에서 은주 씨가 쓴 메모만 전달받았습니다. "옥시는 배상하라."

 

KBS 취재진이 은주 씨의 언니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난 지 꼭 1주일. 은주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참사 사망자는 허망하게도 1명 더 늘었습니다.

 

 

 

 

■ 왜 끝나지 않을까?

 

이렇게 긴 기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숨지고, 피해를 입었는데 왜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을까요?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얘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애초에 허가를 내준 정부가 제조사에 모든 책임을 미루고 해결을 민간에 맡기고 있는 점,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증거가 희미해지는 동안 기업들은 피해와 가습기 살균제의 인과 관계와 증명 책임을 요구하며 피해자들을 버려두고 있다는 겁니다. 피해를 입증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건 온전히 피해자들의 몫이 돼 개별 민사 소송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시작해보니, 환경부는 현재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피해자와 기업 간의 합의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책임이 큰 옥시 한국지사는 "왜 합의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하자 본인들이 3가지 요구사항인 ①합리적인 기준 마련 ②공정한 분담 비율 ③이번 합의가 끝이라는 종국성 담보를 동시에 해결해주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다고 도돌이표처럼 답했습니다. 피해 당사자가 아닌데도 답답하고 참담했습니다.

 

본인과 아들 모두 피해자인 추준영 가습기 살균제 문제해결위원회 공동 대표는 현재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희가 잘못한 게 무엇이 있나요? 사실 부모는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정부도 책임이 없고 가해 기업도 책임이 없대요. 그러면 내 손으로 내가 사서 넣어서 아이를 죽이려고 한 부모의 죄를…정말 벗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에요. 그걸 벗겨줬으면 좋겠어요."

 

 

 

 

■ 옥시 본사에서 회신한 3줄짜리 답변

 

옥시 한국지사는 지난 4월, 조정위원회에 아래와 같은 협조요청 회신을 보냈습니다. 한국지사는 영국 본사에 분담금을 요청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바꿔 말하면 참사 해결의 열쇠를 영국 본사가 쥐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가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데도 피해판정을 한 것으로 밝혀져 배상안 집행을 위한 본사의 재정지원을 받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2022.04.08.)

 

"조정위가 준비한 조정안과 권고안으로는 본사에 추가적인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는 절차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2022.04.26.)

 

11년이 지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취재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과연 옥시가 분담금을 낼 의지가 있는지였습니다.

 

옥시 한국지사에 수차례 물어봤지만 돌아온 답은 언제나 모호하고 불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돈(분담금)을 내어줄 곳에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권한이 있는 곳이니 좀 더 속 시원한 답을 내어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정밀한 단어를 써야 했기에 옥시 본사에 보내는 영문 질의서를 만드는 작업은 꽤나 어려웠습니다. 고민 끝에 핵심 질문들을 먼저 추렸습니다. 그 뒤 전문가의 도움을 거쳐 사흘 만에야 14개 질문이 담긴, A4 두 장 분량의 질의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민과 노력은 무색했습니다. 맥이 풀릴 정도로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옥시 영국 본사의 첫 답변을 받았을 때 느낀 감정입니다. 단 3줄짜리 회신. 14개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폐 질환 1, 2단계 피해자에게 모두 배상했고, 조정위 합의를 위해서 노력하도록 (한국지사에) 권장하겠다"는 게 내용의 전부였습니다. 더 궁금한 게 있다면 한국지사에 물어보라고도 했습니다.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주요 질문을 추려 묻고 또 물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본사의 답에 번번이 실망했습니다.

 

 

 

 

■ 옥시 본사의 '복붙' 답변…진정성은 있는가?

 

아래 두 답변을 찬찬히 봐주시기 바랍니다.

 

옥시 한국지사 답변 (2022.04.25.)

 

당사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으로 인해 폐 손상을 입은 1, 2단계 피해자와 가족분들에 대한 배상을 완료했습니다. 또 특별구제 계정 분담금에 출연한 674억 원과 인도적 기금 50억 원을 포함해 모두 3,640억 원 이상을 부담한 바 있습니다.

… (중략) …

당사는 계속해서 정부 및 업계 등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옥시 영국 본사 답변 (2022.06.28.)

 

옥시 한국지사는 폐 손상을 입은 1, 2단계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배상했습니다. 그들과 직접 소통하는 데 중점을 뒀으며, 피해자 및 유족과의 협의를 통해 받은 의견을 신중하게 반영했습니다. 옥시 한국지사는 영국 본사의 재정 지원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특별구제 계정 분담금에 674억 원과 인도적 기금 50억 원을 기부하는 등 총 3,640억 원 이상을 지급했습니다.

… (중략) …

우리는 옥시 한국지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도록 계속 권장할 것입니다.

 

어떤가요? 차이가 있어 보이나요?

 

지난 6월, 영국 본사의 두 번째 회신을 받고는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다' 싶었습니다. 두 달 전 한국지사로부터 받은 답과 거의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는 걸 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두 답변의 유일한 차이는 영국 본사는 '영어'로, 한국지사는 '한글'로 썼다는 겁니다.

 

영국 본사로부터는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복붙(복사해 붙여넣기)' 수준으로 답변한 옥시. 일부 피해자들이 영국 본사를 찾아갔지만 사과나 사태 해결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을 때의 감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봤습니다.

 

한국지사든, 영국 본사든 매번 모호한 답으로만 대응해 온 옥시입니다. 어떠한 비판과 요구에도 고민이나 노력 없이 같은 답으로 일관한 점은 과연 옥시가 이 사태에 대한 진정성을 갖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 옥시 뒤에 숨은 기업들

 

이 참사, 비율이 높을 뿐 책임이 오롯이 옥시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 기업 명단입니다. SK케미칼, SK이노베이션, 애경, 이마트, 롯데쇼핑, 홈플러스, 홈케어, 다이소,GS리테일, LG생활건강, BSM신소재, 헨켈홈케어.

 

원료 물질을 제조해 공급했다가 분담금의 약 27%를 책임져야 하는 SK케미칼,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해 216명(복수 사용자 포함)의 사망자를 낸 애경도 있습니다. 특히 애경의 경우, 옥시와 마찬가지로 조정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피해자는 4,350명입니다(2022.07.26. 기준). 복수 사용자를 포함한 피해자 수는 이마트(336명)와 롯데쇼핑(358명), 홈플러스(325명), 홈케어(69명), 다이소(55명), GS리테일(51명), LG생활건강(22), BSM신소재(3명), 헨켈홈케어(2명) 순입니다. 옥시가 비판의 중심에 서 있는 사이 이 기업들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참사 11년이 됐습니다. 그러나 해결의 돌파구 마련은커녕 소통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단체들과 비공개로 만났습니다. 국회도 조만간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하지만 피해자 10명 중 8명이 사용한 옥시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옥시에 묻습니다, 그리고 정부에 묻습니다. "정말, 이 참사에 책임을 다했습니까?"

 

 

 

 

[연관 기사]

[추적 ‘공기살인’]① ‘아이에게도 안심’…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45995

[추적 ‘공기살인’]② 옥시 본사에 묻다, “책임지겠습니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47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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