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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아빠’가 된 청년들…비극에도 정부는 ‘무대책’

 

 

 

입력 2022.09.30 (21:22)수정 2022.09.30 (22:13)뉴스 9

 

 

이예린 하누리 김혜주

 

 

 

 

 

[앵커]

 

"아빠의 아빠가 됐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게 된 김율 씨의 이야기입니다.

 

불과 열여섯 나이에 아버지 간병은 물론 생계까지, 홀로 책임져야 했는데, 10년 지난 지금까지도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적절한 도움도 드리고 싶고 따뜻한 인격체로서 존재하고 싶고 효도도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내가 무능해서, 몇푼 안되는 돈에도 쩔쩔매야 하는 현실이..."]

 

이런 경우를 '가족돌봄 청년', 이른바 '영 케어러'라고도 부릅니다.

 

어떻게든 꿋꿋이 헤쳐나가는 젊은이들도 많지만, 고통 끝에 좌절하고,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홀로 방치해두어도 되는 걸까요?

 

극단적인 가족 돌봄이, 결국 '학대 치사'라는 중범죄로 이어진 사건이 있었고 이에 대한 법원의 선고가 어제(29일) 있었습니다.

 

먼저 이예린 기잡니다.

 

 

 

 

[리포트]

 

30대 남매가 살았던 이 집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사건은 두 달 전, 무더운 여름에 일어났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이 화장실에 쓰러졌다", 함께 살던 오빠의 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 이미 동생은 숨져 있었습니다.

 

사인은 폭행과 영양실조.

 

오빠 A 씨는 학대 치사 혐의로 기소됐고 법원은 어제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검찰 구형인 징역 10년보다 낮았는데, 재판부는 "두 사람이 사회로부터 단절된 생활을 한 것이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단절'은 언제부터였을까?

 

가장이었던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7년 전, 비극은 잉태됐습니다.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떠나보내자, 집에 남은 건 남매뿐이었는데, 동생은 또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온종일 간병이 필요한 상황, 오빠는 더 이상 바깥 생활도, 경제 활동도 불가능해졌습니다.

 

A 씨는 이곳에서 홀로 동생을 돌봐왔습니다.

 

별다른 직업이 없었던 탓에 남매는 정부 지원금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은둔'의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이웃 주민/음성변조 : "(4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으세요?) 네. 얼굴을 몰라가지고."]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오빠는 더이상 견디지 못했습니다.

 

동생을 책망하며, 굶기고, 때리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장성원/A 씨 변호인 : "초기에는 피고인이 여동생을 잘 케어했다고 해요. 근데 스트레스가 계속 심화되다 보니까 체벌이 이어지게 되고. 자신도 사실은 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온전한 정신이 있지 않고…."]

 

이런 비극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KBS가 판결문을 검색한 결과, 생활고 속에서 가족을 간병하다 끝내 범행에 이른 경우,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석재은/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 "(나 홀로) 케어(돌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그런 식의 여러 가지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돌봄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돌봄(서비스)의 양을 확대한다든지 그런 식의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겠습니다."]

 

가족을 숨지게 한 사건의 본질, 죗값을 치를 '범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묻습니다.

 

"우리는 바깥으로 아예 나갈 수가 없는데... 간병과 생계... 두 무거운 짐을 어떻게 동시에 짊어질 수 있을까요?"

 

KBS 뉴스 이예린입니다.

 

 

 

 

[앵커]

 

이렇게 비극이 반복되는 걸 막겠다며 정부는 올 초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가족 돌봄 청년들이 얼마나 있는지 조사해 지원하고 법적 근거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진전이 거의 없습니다.

 

간병하던 아버지를 끝내 떠나보내고, 지금은 복역 중인 한 청년을 김혜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내 방 문을 열지 마라", 뇌졸중으로 대소변도 가릴 수 없었던 아버지는 간병하던 아들에게 이런 '마지막 당부'를 했습니다.

 

치료비는커녕 쌀값도 없었던 22살의 아들은 그래도 아버지 방문을 열었습니다.

 

2021년 5월 3일 밤….

 

그 날을, 법원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판결문 : "아버지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피고인에게 물이나 영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피고인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울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뒤 피해자(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존속 살해….'

 

아들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취재진이 그를 교도소에서 만났습니다.

 

'도움 구할 곳이 없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버지를 장애인으로 등록하면 지원을 받을 순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증명서 값이 5만 원, 제게는 그 돈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죄송할 뿐이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사건이 알려진 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어떻게 되고 있을까요?

 

지난 2월 보건복지부는 '가족 돌봄 청년 지원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어려운 청년이 얼마나 있는지 전수 조사를 하고, 5월부터 지원을 시작하며, 법적 근거도 마련하겠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음성변조 : "진도가 법까지 나갈 수 없는 게, 어느 정도 정의가 나와야 하잖아요. '가족 돌봄', '가족'의 범위가 어떨지. 중·고등학교에 (설문을) 뿌렸는데 응답률이 너무 낮아서 기간을 계속 연장했거든요."]

 

가족 돌봄 청년들은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는, 극한의 고립감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김율/10년째 아버지 간병 : "방치되고 고립됐다고 여기거든요. 보호자가 되는 법을 살면서 배운 적이 없잖아요. 누군가 아프면 내가 어디서 어떻게 지원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지금도 가족 돌봄 청년을 위한 사이트가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전순옥/전태일재단 이사 : "본인이 일하러 나갔을 때 누군가가 내 부모님을 돌봐줄 수 있는, 사회적으로 그러한 시스템이 좀 잘 작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사회의 건강한 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우리가 같이 좀..."]

 

국회 입법조사처가 추정한 우리나라 '가족 돌봄 청년'의 수는 30만 명에 이릅니다.

 

그들의 문제는 더이상 '개인 사정'이 아닌,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그들에게, 이제라도 '안전망'을 쳐줘야 합니다.

 

KBS 뉴스 김혜주입니다.

 

 

 

 

촬영기자:이상훈 박찬걸 허수곤 최석규/영상편집:김선영 신남규 강정희/그래픽:김지혜 김정현 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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