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불확실한 일본의 ‘새로운 자본주의’
2시간 전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4일 총리관저에서 첫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이날 강조한 것은 경제 성장을 위해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실현이었다. 도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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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일본의 ‘새로운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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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분배 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지난해 10월8일 기시다 일본 총리가 취임 뒤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연설에서 노동자와 하청기업에 대한 분배강화, 중산층 확대, 간호·노인요양·보육 노동자 임금인상을 강조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임금인상을 통해 성장의 과실이 공평하게 분배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간판 정책으로 제시한 바 있다.
실제 총리 관저는 지난해 10월15일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과 코로나 이후 새로운 사회 개척을 위한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본부를 설립하고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자유방임 자본주의에서 복지국가, 그리고 신자유주의로 변화해왔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시장중심적 자본주의가 가져온 불평등과 기후위기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과 국가가 함께 국민의 행복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체제다.
이런 시도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것이다. 2013년 아베노믹스 도입 이후 경제성장은 약간 회복됐지만 임금과 가계소득, 그리고 국내소비는 정체됐다. 아베노믹스 이후 9년 가운데 6년 동안 실질임금이 마이너스 성장해, 실질임금 수준은 아베노믹스 이전보다 낮아졌다. 일본 정부도 1991년에서 2019년까지 1인당 실질임금이 미국은 41%, 독일과 프랑스는 34% 상승했지만 일본은 고작 5% 상승에 그쳤다고 보고한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총선에서는 임금인상과 소득분배 개선이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됐다. 야당은 저소득층 지원과 소득세, 법인세 인상을 제시했고, 자민당도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기 위해 임금인상 기업에 세제지원을 약속했다.
총선 승리 이후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 추진에 의욕을 보였다. 지난해 11월에는 긴급제언 문서를 통해 인적자본 확충에 기초한 성장 촉진과 성과의 분배를 강조했고, 12월에는 중소하청기업이 노동 비용이나 원자재 비용의 상승을 원청기업에 전가할 수 있도록 지원과 감독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올해 6월에는 사람에 대한 투자와 분배, 과학기술과 혁신, 스타트업 육성, 디지털과 그린 전환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새로운 자본주의를 아베노믹스와 단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시다 정부도 아베노믹스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아베 정부도 ‘일억총활약 계획’에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는 각국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포용적 성장을 추진하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팬데믹 시기에도 선진 각국은 시민들의 소득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을 확장했고, 일본 정부도 이런 흐름을 따랐다.
그러나 한계도 많다. 기시다는 금융소득세율이 근로소득세율에 비해 훨씬 낮아 연수입 1억엔이 넘으면 소득세 부담이 오히려 하락하는 현실을 깨기 위해 금융소득세율 인상을 제시했지만 주가 급락 속에 철회됐다. 최근의 실행계획도 분배보다 성장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럼에도 새로운 정책이 침체된 민간투자를 촉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아베파의 반발을 배경으로 6월 발표된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에서는 2025년까지 기초재정수지를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도 삭제돼 재정건전화 의지도 후퇴했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앞날은 불확실한데 정작 일본 경제와 시민들은 이제 엔저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급속히 금리를 올렸지만, 일본은행은 여전히 마이너스 기준금리와 장기국채금리를 통제하는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로다 총재는 인플레가 확산해 임금인상, 그리고 경기회복으로 이어지는 물가-임금상승의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상승은 지지부진해 4월 이후 실질임금 상승률은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반면 급속한 엔화 가치 하락은 수입물가 상승을 낳아 일본 가정의 평균 생활비 부담이 연간 약 8만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랫동안 정체되고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일본에서 과연 임금상승과 분배의 개선 그리고 자본주의의 변화가 가능할까. 정부 기대와 달리 정치적 압력 없이는 현실에서 임금인상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의 변화 없이는 일본에서 새로운 자본주의는 말뿐이며 전혀 새롭지 않은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