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는 왜 220V를 쓸까요?
이유범 - 15시간 전
[파이낸셜뉴스] 잠잠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해 막혔던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출·입국 시 PCR 검사 의무가 해제되고, 일본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는 등 호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갈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그 나라의 정격전압이다.
미국·일본·대만 등은 정격전압 100∼120V 전기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한국·유럽·중국 등은 정격 전압 200∼250V 전기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이 같은 국가별 정격 전압의 차이는 전기 사용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美·日·대만 110V와 韓·中·유럽 220V
20일 한전과 전력업계 등에 따르면 110V의 전압의 사용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토마스 에디슨이 1879년 탄소 필라멘트를 이용한 백열등 전구를 발명했지만 220V 전압을 버틸 수 없었다.
에디슨의 라이벌이었던 니콜라 테슬라가 220V의 안전성을 입증했음에도 백열등을 이용하지 못하자 미국에서는 정격전압 110V 전기가 표준이 됐다. 하지만 1899년 독일의 베를린전기회사(BEW)는 새로 개발된 금속 필라멘트 전구가 높은 전압에도 잘 견딘다는 점을 이용하여 220V 전기 시스템을 도입했다.
세계 각국은 미국이나 독일 중 한 나라에서 전기 시스템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나라마다 정격전압이 제각각이 됐다. 1906년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설립 이후, 전기 규격을 통일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해당 시도는 무산됐다.
일부 유럽국가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110V 전력을 채택한 적이 있지만 1950∼60년대에 220V 전기로 승압사업을 하여, 마침내 유럽은 전기 시스템이 통일됐다
반면 미국·일본·대만 등은 막대한 비용 때문에 승압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전기 선로를 교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의 전기·전자제품까지 모두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30년 걸린 승압 사업, 산업·일상을 바꾸다
조선왕실은 지난 1884년 에디슨 전기회사와 전등설비를 위한 계약을 맺고 1886년 11월 미국인 전등기사 매케이(McKay)를 초빙해 1887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등소를 완공했다. 이후 같은 해 3월 6일 경복궁내 건청궁에서 최초의 전등이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초창기 전기 도입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일제 해방 이후에도 110V 전기가 정격 전압으로 자리잡았고 이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1970년대 들면서 전기 사용량이 전국적으로 증가하면서 110V의 전압으로는 늘어난 사용량을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전기 수요량이 갑자기 증가하면 과부하로 정전이 자주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전선을 모두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자 대안으로 선택한 사업이 '표준전압 승압사업'이었다.
정부와 한전은 1973년부터 2005년까지 '표준전압 승압사업'에 1조4000억원을 투입했다.
승압사업은 우리 일상을 크게 바꿨다. 220V로의 승압으로 인해 더 많은 가전기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수압이 높으면 수도관을 바꾸지 않아도 더 많은 수돗물을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220V로 전압을 높이면 110V를 사용할 때보다 전기 사용량을 2배 늘릴 수 있다.
덕분에 대용량 가전제품을 쓸 수 있게 됐고, 동시 사용 대수도 크게 늘어났다. 전력손실과 전기료가 크게 절감된다.
배전선로의 전력손실은 공급전압의 제곱에 반비례해 감소한다. 쉽게 말해 전압이 높으면 배전선에서의 전력손실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110V를 220V로 승압하면 배전선로 전력손실은 75%가량 크게 줄어든다. 220V 승압 이후 우리나라는 매년 40억kWh 정도의 전력을 아끼는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1700억원 정도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의 승압사업이 세계 전력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완료된 승압사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