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시위해도 보는 사람 없다" 집회 줄어든 용산, 그대신 붐비는 곳
입력 2022.10.26 17:06
업데이트 2022.10.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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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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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이전에 따라 용산이 새로운 집회‧시위 1번지가 될 것이란 예측이 어긋났다. 용산 일대에서의 집회‧시위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경찰과 전문가들은 주목도가 떨어지고 접근성이 안 좋은 용산 대신 광화문으로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과 시청역 일대가 대규모 집회로 일부 구간 교통 정체를 빚고 있다. 이날 세종대로에서는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가 열렸고, 시청역 앞에서는 '전국집중 촛불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전쟁기념관 앞에서 집회하면 보는 사람 없어”
26일 서울 종로경찰서와 용산경찰서에 정보공개 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용산서에 접수된 집회‧시위 신고 건수는 지난 2월 184건에서 3월(206건)·4월(242건)·5월(278건)·6월(282건)·7월(282건)까지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하다가 8월 289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다 지난달엔 전월 대비 16건 적은 273건으로 첫 감소세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5월(278건)보다 적은 수치다. 이달 12일까지는 89건의 집회·시위가 신고됐다.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집회‧시위의 중심이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자리바꿈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삼각지역과 전쟁기념관 앞 등에서 크고 작은 집회가 이어졌다. 하지만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일대가 다수의 사람이 모이기엔 광화문보다 공간이 좁고, 유동인구가 적어 집회·시위를 열어도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정보경찰관은 “집회와 시위라는 게 내가 주장하는 바를 열린 공간에서 남에게 알린다는 것인데, 용산의 경우 보는 사람이 적다 보니 집회 효과가 떨어진다고 보는 거 같다”고 귀띔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광화문에서 집회나 기자회견을 열면 지나가는 직장인들이 한 번이라도 메시지를 보거나 듣지만, 전쟁기념관 앞은 경찰과 기자들만 있을 때가 많다”며 “집회 사진을 찍어도 광화문이 잘 나온다”고 말했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한몫했다. 지하철 기준으로 광화문역(5호선), 시청역(1‧2호선), 종각역(1호선), 경복궁역(3호선)을 이용할 수 있는 광화문과 달리 용산엔 4호선과 6호선이 지나는 삼각지역만 있다. 집회‧시위 대절에 이용되는 전세 버스 업체 관계자는 “광화문의 경우 인근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데, 용산은 버스를 주차할 공간이 별로 없어 대기하기가 애매하다”고 말했다.
집회‧시위, 용산으로 빠지다 다시 광화문으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회·시위는 다시 광화문으로 몰리고 있다. 종로서에 접수된 집회‧시위 신고는 지난 2월(379건)·3월(568건)·4월(517건)·5월(402건)·6월(380건)·7월(350건)까지 계속 감소하다 8월 395건으로 반등했다. 지난달에도 392건의 집회·시위가 신고됐다.
경찰 관계자는 “종로는 광화문뿐만 아니라 종각, 청계광장 등 집회‧시위를 열 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며 “정부종합청사, 미국대사관, 평화의소녀상도 있다 보니 광화문 일대는 늘 집회‧시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광화문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서울의 중심이자 상징이라는 특성 때문에 집회를 하는 사람들은 광화문이 용산보다 더 낫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대규모 집회‧시위가 광화문에서 이뤄졌던 역사적 맥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화문광장에서의 집회‧시위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시는 지난 8월 광화문광장 재개장을 하면서 “집회‧시위는 원칙적으로 허가 대상이 아니다”란 입장을 고수해왔다.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에선 서울시가 내세운 이 원칙이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수차례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존 입장에서 선회해 “광화문광장 행사를 심사할 때 집회·시위 등의 목적은 판단하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지난 12일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김남영 기자 kim.namyoung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