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경찰청 정보국이 '친박계' 선거 지원…강신명 전 경찰청장 1심서 실형
입력 2022.10.26 17:24
오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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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 관련 정보를 청와대에 지속해서 제공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 대해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강 전 청장 등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총선 앞두고 경찰청, ‘친박계’ 후보 대책 세워
강 전 청장과 이철성 당시 경찰청 차장, 김상운 당시 정보국장, 박기호 당시 정보심의관은 제20대 총선과 관련해 경찰청 정보국 정보2과에 선거 관련 정보를 수집해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박화진 당시 청와대 치안비서관, 정창배 당시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이재성 전 정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역시 함께 기소됐다.
당시 정보 경찰들은 대구 내 총선 관련 동향이나 주요 후보자들의 지역 내 세평, ‘친박(친 박근혜)계’ 인사들에 대한 지역별 세평 등을 파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무수석실로부터 친박계 인사 60~70명의 명단을 받아 당선 가능성을 분석하거나, 현안에 대한 대책을 제언하는 내용도 보고됐다. 재판부는 이 같은 15건의 정책 자료가 청와대에 지속해서 배포됐을 뿐 아니라, 친박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을 계획하고 수립하는 과정에도 직·간접적으로 활용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청와대에 자료를 배포한 행위가 선거운동 자체에는 이르지 않았다 해도, 선거운동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행위”라며 공직선거법 위반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공직선거법 제86조 제1항 제2호는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그 기획의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경찰청장과 고위 간부인 피고인들이 정보 경찰들에게 위법한 정보 활동을 지시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도 인정됐다.
다만 재판부는 현 전 수석에 대해서는 면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 전 수석이 경찰청에 선거 관련 정보활동을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 전 수석이 이번 공소사실과 포괄일죄에 있는 혐의에 대해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현 전 수석은 불법 여론조사를 하는 등 친박계 인물들의 선거운동 기획에 참여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확정받았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좌파 견제 보고서’작성…“특정 성향 제어위해 공적 권한 행사”
강신명 전 청장은 지난 2012년 경찰청 정보국장으로 재직한 시절에도 위법한 정보 활동을 지시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았다.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이철성 당시 정보국장, 김상운 당시 정보국장, 박기호 당시 정보2과장, 정창배 당시 정보2과장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이른바 '좌파 세력'을 견제·제어하고 '우파 세력'을 지원·육성하는 대책 등을 담은 보고서를 청와대에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들의 직권남용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그러면서 "개인이나 단체가 정부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다는 이유, 특정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성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해당 개인이나 단체를 배제하고 견제, 제어하기 위해 공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정신적 자유권을 침해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국민을 부당하게 차별대우하는 위법한 행위"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국정운영을 보좌한다는 명목으로 이뤄진 편향된 정보활동은 결국 최종적인 정보수요자인 대통령을 이념의 틀에 가둬 국가와 사회를 분열시킨다"며 "사상의 자유와 다원성을 기초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존립에 큰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연합뉴스
현기환 ‘면소’외 모두 유죄…“경찰 정치 편향 집단 전락”
재판부는 강 전 청장이 지난 20대 총선과 관련해 저지른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혐의 범행에 대해서는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 2012년 정보국장 시절 정보 활동을 지시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범이 아닌 죄가 선거범의 양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선거범과 선거범이 아닌 죄는 분리해서 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강 전 청장의 제20대 총선 관련 범죄와 직권남용죄는 따로 분리해 선고됐다.
이에 따라 이철성 전 경찰청 차장에게는 징역 10개월과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김상운 전 정보국장과 박기호 정보심의관, 정창배 전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게는 각각 징역 8개월과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국가경찰 조직을 공직선거에 개입하도록 하고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맹종하는 정치 편향적 집단으로 전락시켰다”면서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지시를 받아 수동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됐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과 함께 기소된 박화진 전 청와대 치안비서관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재성 전 정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정보활동을 최종적으로 승인하고 지시한 강 전 청장의 죄책이 가장 무겁다며 유일하게 실형을 선고했지만, 재판 출석 현황 등을 고려해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보고 재구속은 하지 않았다. 앞서 강 전 청장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다. 강 전 청장의 형은 이번 판결의 확정 결과에 따라 집행될 예정이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