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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으로 중동유럽 국가들이 유럽 주도권 장악
등록 2023.01.27 10:11:17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러와 외교·교역 중시 프·독 우왕좌왕하는 사이
폴란드 등 적극적 지원과 난민 받아들이면서
도덕적·정치적 우위…유럽 안보 발언권 강화
경제 등 다른 의제에선 여전히 독·프가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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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AP/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과 에길스 레비츠 라트비아 대통령(오른쪽),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용자의 길'을 걷고 있다. 2022.09.11.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장 목소리가 커지면서 유럽 대륙의 주도권이 서부에서 중동부 국가들로 옮아가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7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8월 프라하를 방문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불쑥 “유럽의 중심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현실에 안주하던 EU와 나토에 충격을 가했으며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전쟁 초기 폴란드와 발트해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의 도덕적 필요성을 강조한 반면 프랑스와 독일 등 전통적 유럽 강국들은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현재 EU와 나토를 이미 가입을 신청한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를 포함해 발칸반도 서부를 넘어 시급히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에 이르렀다.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최근 서방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탱크 지원 결정을 주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와 관계를 중시해온 “구 유럽” 국가들을 대신해 소련의 압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유럽 중동부 국가들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세인트 앤토니대 유럽역사학자 티모시 카든 애시는 “중동부 유럽인들의 목소리가 유럽 전역에서 더 크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동유럽 문제가 중심 의제가 되고 있다”면서 숄츠 총리의 말이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유럽이 군사력을 중시하게 됐고 “안보를 중시하는 중동부 유럽이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폴란드가 빠르게 군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군사력 강화 방침을 발표한 폴란드가 최근 첨단 무기를 대거 사들이면서 EU와 나토에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폴란드는 탱크 지원을 머뭇거리는 독일이 탱크 지원에 나서도록 가장 큰 힘을 발휘한 나라다.
유럽대외관계위원회(ECFR)의 베를린 소장인 야나 푸글리린은 “힘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이런 경향을 굳힐 것”이라면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도덕적 리더십의 부상”이라고 말했다. 중동부 국가들이 스스로를 “EU 자유의 투사로 독재에 맞서는 가치를 수호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오래도록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제국주의적 야심과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에 대해 경고해온 것이 옳았고 러시아와 외교 및 교역을 중시해온 서유럽국들이 순진했음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푸글리린은 전쟁 초기 우크라이라를 적극 지원하고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유럽의 분위기를 주도한 반면 “마지막 순간까지 푸틴과 협상을 시도한 독일과 프랑스에선 침공에 놀라 공황에 빠졌다”면서 중동유럽 국가들이 “적극적 행동으로 신뢰할 만한 나라가 되면서 우리는 할 말이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여전히 러시아와 맞서지 않는다는 잘못된 안보 정책을 버리지 못하면서 역풍을 맞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평화협상 중재의사를 밝히면서 러시아에 안보보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동유럽을 넘어 유럽 모든 곳에서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나토와 미국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면서 독자적 유럽안보를 강조해온 프랑스의 입지가 약해졌다. 나토는 미국의 군사력에 한층 더 의존하게 됐고 그만큼 미국의 주도권이 커졌다.
전쟁은 물론 러시아와 에너지 및 교역 차단에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던 독일 정부는 현재 중국에 대한 의존 심화가 마찬가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불거지면서 값싼 러시아 에너지와 중국과의 무제한 교역을 바탕으로 하는 수출 중심 경제를 재편해야 하는 과제에 맞닥트렸다. 이와 관련 가튼 애시 교수는 “결국엔 동유럽 국가들이 발전해 독일 경제를 뒷받침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당분간 유럽 무대에서 뒷전으로 물러나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EU 역사가 룩 반 미델라르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래 EU의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한 법치 준수 요구가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폴란드가 최전선 국가로서 무기를 지원하고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정치적, 도덕적으로 우월해졌다”는 것이다.
또 폴란드의 연구기관 레스 푸블리카의 보이체크 프리빌스키 연구원은 “나토에서 차지하는 폴란드의 비중이 커졌다. 무기 구매와 국방력 강화로 안보문제에서 발언권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으로 더 이상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한스 쿤트나니 연구원은 “폴란드 등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자신감이 넘치는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수세적”이라면서 문제는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를 계기로 신보수주의가 커지면서 유럽이 분열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편 EU의 힘은 경제와 인구를 바탕으로 한다면서 유럽의 중심추가 여전히 서방에 있을 것이라면서 “도덕적 우월감과 자신감만으로 EU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 미델라르 교수도 “EU의 많은 의제가 러시아, 전쟁, 안보가 아닌 다른 문제들이다. 힘의 균형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며 프랑스와 독일이 여전히 경제 문제 논의에서 중심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숄츠 독일 총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아 당분간 두 나라가 협력하면서 유럽의 주도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이 공백을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채우려 시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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