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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상대로 기업이 뭘 할 수 있겠나”…마른 곳간 털고도 허탈한 반도체·자동차
박성국 기자
별 스토리 • 2시간 전
“미국 대통령 상대로 기업이 뭘 할 수 있겠나”…마른 곳간 털고도 허탈한 반도체·자동차
© 제공: 서울신문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버지니아비치에서 행한 연설에서 오는 9일로 예정된 새해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나는 분명히 하고 싶다. 억만장자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며 “ 오바마 케어로 알려진 건강보험개혁법(ACA)에 따른 연방정부의 건강보험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버지니아비치 AFP 연합뉴스
미국 상무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자국 유치에 나서며 약속했던 반도체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기업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을 대거 끼워 놓으면서 우리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동차 산업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의 자국 중심 산업 생태계 조성에 막대한 로비 자금을 쏟아부으며 대응했지만 미국은 ‘자국 이익 중심’ 기조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상무부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 보조금 지급 조건에는 ▲초과이익 공유 ▲군사용 반도체 미국 우선 공급 ▲국방·안보 관련 반도체 시설 제공 ▲10년간 중국 등 우려국가 투자 금지 등 민간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고 첨단 기술 유출 우려가 큰 독소조항이 대거 포함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 외에는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기로 했지만,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 현지에서도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시설을 정부에 공개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시설 사용에 동의해야 보조금을 주겠다는 발상은 중국에서도 떠올리기 힘든 처사”라면서 “지금 미 행정부의 모든 정책이 바이든의 재선에 맞춰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보조금이라는 ‘당근’으로 기업 투자를 끌어냈는데, 이 당근이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매력이 있는지를 떠나 먹으면 어떤 탈이 날지 다양한 경우를 따져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상무부의 방침을 ‘사회주의적 산업정책’이라고 비판했다. WSJ는 상무부 발표 직후 낸 사설을 통해 “반도체법이 (기존) 법에도 없는 기준을 들이대며 기업에 좌파(progressive) 정책을 강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면서 “정부가 기업에 돈을 줘서 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실행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전반의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 당국도 적극적인 대응 의지를 밝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반도체법이 우리 기업에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에 “앞으로 신청 기업과 미국 행정부 간 보조금의 규모와 지원 조건에 대한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면서 “우리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유관 부처, 업계와 소통하면서 필요한 외교적 지원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