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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저승사자’ 이정섭 뜨자 기업들 ‘벌벌’…전례 없는 총수 수사 드라이브

 

 

 

마피아와 전쟁 이끈 ‘팔코네’, SNS 닉네임으로 사용

반부패 수사 체계 잡힌 이탈리아에서 장기 연수

유재수 감찰 무마 조국 기소 주도

조현범 회장 구속 등 수사 성과

공정위 고발 전 사건, 선제적 압수수색으로 수사 주도권 행사

대검 반독점과 신설 추진…“공정거래 수사 역량 강화”

 

 

 

김종용 기자

입력 2023.03.14 06:00

 

 

이정섭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 /조선DB

이정섭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 /조선DB

 

 

 

지난 9일,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회장이 검찰에 구속됐다. 계열사 자금을 끌어와 지인의 회사에 부당하게 빌려주고 회삿돈을 횡령해 수입차를 구매하는 등 200억여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를 받는다. 계열사를 부당 지원해 막대한 배당금을 받아간 혐의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대기업 총수가 구속된 사례였기에 서초동 분위기도 떠들썩했다.

 

법조계에서는 조 회장의 구속을 기업 총수들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의 신호탄으로 본다. 검찰이 기업 총수들의 각종 범죄에 대한 강한 수사 의지를 내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수사 대상에 올라있는 기업 총수들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대상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윤석열 정부는 기업 경제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인사에서 이른바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린 이정섭 부장검사를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에 배치한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부장검사는 일명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을 수사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기소한 인물이다. 공정거래조사부장으로 부임한 뒤에는 기업 수사를 강력하게 추진해왔다. 이번 조 회장의 구속도 이 부장검사가 이끄는 공조부가 이뤄낸 성과다.

 

현재 검찰은 공정위의 고발 요청 없이도 선제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는가 하면 공정위 고발 대상에서 빠진 기업 총수나 임원들의 사익 편취 행위를 인지해 강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엔 이 부장검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 부장검사 닉네임 ‘팔코네’…마피아 수사 중 사망한 검사

 

이 부장검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아이디는 ‘팔코네’다. 이탈리아 조반니 팔코네(1939~1992) 검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팔코네 검사와 그의 친구 파올로 보르셀리노(1940~1992) 판사는 마피아와의 전쟁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팔코네 검사가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마피아는 344명에 이르고, 이들이 받은 형량은 2665년에 달한다.

 

 

 

조반니 팔코네(왼쪽)와 파올로 보르셀리노. /위키피디아

조반니 팔코네(왼쪽)와 파올로 보르셀리노. /위키피디아

 

 

 

팔코네 검사는 1980년 시칠리아에 부임한 후 마피아를 수사하다 1992년 5월 23일 폭탄 테러로 아내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한 사람이 먼저 죽더라도 남은 사람이 마피아와 싸우자”고 맹세한 친구 보르셀리노 판사가 유지를 이어갔으나, 그도 결국 두 달 뒤 테러로 사망했다.

 

대일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 부장검사는 사법연수원 32기 출신으로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검사일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 아마추어 복싱선수로 활동한 그는 법조인으로서는 드물게 2009년 이탈리아 밀라노대학교에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마피아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이탈리아는 1990년대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하며 각종 반부패 사건에 대한 수사 역량이 체계화된 곳이다. 이 부장검사는 연수를 다녀온 뒤엔 2010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으로 근무하며 특수 수사에 대한 첫발을 뗐다.

 

지난해 이 부장검사가 부임한 뒤 공조부는 공정위에 10건의 고발을 요청했다. 이는 2018년부터 2021년 4년간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한 8건보다 많은 규모다.

 

이 부장검사는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뒤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에 대한 추가 수사도 진행하고 있다. 허 회장 등은 2012년 12월 회장 일가에 대한 증여세 부과를 피하기 위해 SPC 계열사들이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삼립에 헐값으로 팔아 샤니, 파리크라상에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앞서 공조부는 삼성전자(삼성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 네이버(부동산사업 관련 시장지위 남용), 호반건설(김상열 전 회장의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 누락), 빙그레·롯데푸드·롯데제과·해태제과식품(아이스크림 가격 담합), 하림·올품·한강식품·동우팜투테이블·마니커·체리부로(닭고기 가격 담합) 등을 재판에 넘기기도 했다. 현재 삼성생명 전직 임원과 아난티가 서울 송파구 호텔 용지를 사고 되파는 과정에서 회삿돈을 횡령한 의혹과 관련해서도 압수수색을 하는 등 강제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부장검사가 이끄는 공조부는 공정위가 고발한 범위에서만 수사하던 이전 관행을 벗어나고 있다. 일례로 공조부가 현재 수사 중인 ‘가구 업체 아파트 특판 담합’ 사건은 공정위 고발이 이뤄지기도 전에 검찰이 선제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사건이다. 검찰은 해당 사안을 공정위 고발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닌 ‘입찰 담합’ 등 다른 혐의로 수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10일 최양하 전 한샘 회장을 소환해 조사한 것도 그 일환이다.

 

공정거래 분야를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이 부장검사가 부임한 이후 다수의 총수 수사가 진행되면서 단순히 벌금만 내면 된다는 생각을 하던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공정위 조사에만 대응하다가 최근 검찰 수사가 거세지면서 급하게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섭, 한동훈 3차장 시절 공정위 수사 주도

 

이 부장검사는 부부장검사로 근무할 때부터 반부패 범죄에 대한 수사 의지가 강했다. 한동훈 장관이 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특수 수사를 지휘하던 당시 이 부장검사는 공조부 부부장검사였는데, 공정위 퇴직자의 재취업 특혜 정황을 파악하고 강제 수사에 직접 나선 이력이 있다.

 

 

 

/뉴스1

/뉴스1

 

 

 

이 부장검사는 당시 현대차와 현대건설, 쿠팡 등 기업들은 물론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공정위 압수수색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 결과 검찰은 공정위 수장이던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과 김학현·신영선 전 부위원장 등 전·현직 공정위 간부들 12명을 재판에 넘길 수 있었다. 정 전 위원장은 공정위 간부들과 공모해 2012~2017년 기업을 압박해 퇴직자 16명을 채용하게 한 혐의 등을 받았다. 검찰은 공정위 측이 기업과 직접 접촉해 퇴직자의 일자리를 요구하고 급여·처우까지 사실상 공정위가 결정한 것으로 봤다. 취업자는 실질적인 역할 없이 임원 대우를 받으며 억대 연봉과 업무추진비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2020년 2월 정 전 위원장의 업무방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조직의 영향력을 이용해 기업에 퇴직자의 취업 자리를 마련하고 관리했다”며 “기업은 인사 업무를 방해받았고, 이로 인해 자유로운 창의적 기업 활동이 저해됐다”고 지적했다.

 

 

 

◇ 대검 ‘반독점과’ 신설 추진…”공정거래조사부 수사 역량 강화”

 

이처럼 이 부장검사가 기업 수사에 대한 강한 의지와 추진력을 갖고 있다 보니, 대검찰청에서도 공조부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앞서 대검은 법무부에 반부패·강력부 산하 반독점과 신설을 요구했고, 법무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직제개편안을 행안부에 전달했다. 대검이 구상하는 반독점과는 공정거래 분야 수사 ‘지휘’보다는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부장검사 등 공조부 검사들이 수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현재는 이 부장검사를 포함한 공조부 검사들이 수사 외에도 실무적 쟁점과 관련한 세미나 준비 등 다른 일도 병행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반독점과 신설을 통해 이러한 대외적인 업무를 대검의 소관부서가 전담하고, 공조부는 수사만을 전담해 수사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이 부장검사에게 “공조부의 인지 수사를 늘리라”는 취지로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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