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
누누티비 논란이 과잉 검열로 흐르지 말아야 한다 (이준석)
by
이준석
2023-03-27
6 minute read
누누티비 사이트 캡처
누누티비라는 웹사이트가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 외 영화, 드라마 등 여러 가지 저작권이 있는 영상물을 불법으로 올려놓고 서비스하는 사이트이다. 일설에 따르면 조회 수가 일간 수천만에 달하고, 콘텐츠 제작사의 피해액이 5조 원에 달한다는 자극적인 수치까지 보도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PwC를 인용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한국의 OTT 시장의 매출 규모가 8억 3,200만 달러 정도 된다고 한다. 아무리 그 이후로 가파른 성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5조 원의 손실이 발생했을 리는 만무하다. OTT업계가 누누TV에 대한 제제 여론을 만들기 위해서 단순히 조회수의 산술 합에 콘텐츠 가격을 부풀려서 곱해서 만들어낸 숫자로 이해된다.
하지만 누누티비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 사이트는 명백한 불법이니 따로 내가 왈가왈부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 정치권이 보이는 반응을 보면 규제 일변도의 한국 정보통신 정책이 HTTPS 차단과 카톡 검열에 이은 새로운 금자탑을 쌓으려고 나아가는 것 같아서 두렵다. 그래서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아무 생각없이 정치적 인물이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항상 주목을 받는 존재들이기에 그들의 행동이나 언급이 의도하지 않게 IT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때로는 그들의 영향으로 어떤 서비스가 갑자기 주목을 받아서 활성화되기도 하고, 또는 국민적인 불신을 쌓을 수도 있다.
일례로 예전에 내가 녹취를 자동으로 풀어주는 네이버의 클로바노트라는 서비스를 사용해서 원희룡 장관과의 전화 녹취 내용을 공개했을 때 해당 서비스의 사용자가 많이 늘어나서 당황했었다는 이야기를 그 회사의 지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가 허위 사실로 나를 공격하고, 그것을 반박하는 과정이었으니 나에게는 결코 정치적으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한 서비스는 정치면을 타고 상당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체리따봉 사건도 복기해보자. 카카오톡이 아무리 스스로 보안성과 비밀대화의 안전성을 이야기한다 한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가 소통을 위해 텔레그램을 사용하던 상황이 뜻하지 않게 노출되었을 때, 국민은 왜 그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아야 할 어떤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공교롭게 둘 다 수사를 해본 검사 출신이니 그쪽 방면으로 연계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 외에도 검찰이 늘 자랑하는 포렌식 능력이 한동훈 장관의 아이폰 앞에서 막혀버린 상황을 보면서 정말 검찰이 풀고 싶었을 텐데 못 푸는 웃픈 상황에서 검찰도 못 푸는 핸드폰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누누티비 사태가 주목을 받으니 정치인들이 나름의 해법을 마련해서 도마 위에 올리기 시작한다. 국회 과방위 위원인 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정보통신망법 44조를 다음과 같이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변재일의원 등 10인)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⑤ 국내에 데이터를 임시적으로 저장하는 서버를 설치ㆍ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중 이용자 수, 매출액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는 제1항 각 호에 해당하는 정보의 유통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 기술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국회의원은 입법부의 일원이기 때문에 법을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명하고, 따라서 다른 의원들보다 발 빠르게 이 문제에 관해서 관심을 두고 입법 시도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외국에 서버를 둔 누누티비에 한국에서 접속할 때는 한국에 있는 CDN이라는 서비스에 정보를 받아서 저장해두는데, 그 임시로 저장하는 CDN이라는 서비스의 내용을 검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CDN과 캐시서버의 개념이 생소하다면 이렇게 해석하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반의 학생들이 오늘 점심 메뉴가 뭔지 알고 싶고, 그 점심 메뉴는 급식실 입구 게시판에 붙어있다고 한다면, 그 반의 모든 학생이 직접 급식실에 갔다 오는 것이 아니라 한 학생만 급식실에 다녀오고 그걸 종이에 적어서 반 게시판에 붙여놓으면 모두 읽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해외에서 불법으로 운영되는 누누티비의 서비스를 국내에서 임시로 저장해두고 서비스해주는 캐시서버를 규제하면 누누티비에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지금 변재일 의원이 제안한 CDN 규제법은 행정편의주의에 가깝고, 국내 벤처기업들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는 사안이다.
우선 실용성 면에서 학생들이 언제든지 직접 급식실로 달려갈 수 있는 경로가 열려있다. 혼잡하고 느려지기는 하겠지만, 접근될 것이다. 아무리 캐시서버를 규제해도 누누티비가 설정을 바꾸는 것에 따라서 국외 서버에 직접 접속하는 사람들을 막기는 어렵다.
누누티비가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Cloud Flare라는 업체의 CDN 서비스는 전 세계 인터넷 사이트에 5분의 1가량이 사용할 정도로 보편화 되어 있는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가 만약에 과도한 규제로 영향을 받아서 서울에 설치한 캐시서버를 운영하지 않기로 포기했을 때 국내의 인터넷 기업들이 받게 될 타격은 매우 크다. 자체적으로 캐시서버를 운영하기 위해 더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할 수도 있고, 영세한 업체들은 그럴 여력이 없어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해외 플랫폼 중 트위티와 같은 영상 플랫폼은 망 사용료 문제 등으로 한국 내 서비스의 품질을 재조정했던 바 있다. 변재일 의원의 입법에 따른 검열 시스템의 구축을 Cloud Flare가 한국을 위해서 특화된 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한국에서의 캐시서버를 철수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누누티비가 실제로 수익구조가 유지될 수 있을까?
누누TV라는 서비스의 확산 가능성을 보자면 우선 이런 유형의 서비스가 큰돈을 벌기는 어렵다. 동영상 서비스는 회선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데 비해 수익구조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의 서비스를 수익화하기 위해서는 보통 직접 과금 또는 광고를 통한 수익 창출이 필수이다. 우선 애초에 누누티비라는 것을 이용하는 이유가 콘텐츠를 돈 안 내고 사용하겠다는 심리이기에 직접 과금은 불가능하고, 직접 과금을 허용할 결제대행사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는 구글의 AdSense를 광고 중계 플랫폼으로 이용하고 있다. 광고주가 구글에 광고를 맡기면, 구글이 각 사이트를 심사해서 광고를 달 수 있는 사이트에 사이트가 제공하는 콘텐츠와 연관성이 있는 광고를 게재하고, 누군가가 광고를 클릭했을 때, 광고주가 사이트 운영자에게 광고비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구글은 이 모든 과정에서 상당히 엄격한 기준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광고의 내용과 광고를 붙일 수 있는 사이트를 제한한다. 그리고 인터넷 광고시장의 주도권은 AdSense로 모였기 때문에 다른 플랫폼을 써서는 사이트 운영에 따른 수익을 얻기가 어렵다.
누누TV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매우 큰 인터넷 회선 용량이 필요한 동영상 서비스이고, 직접 과금이나 상대적 고단가의 AdSense 없이 회선 비용을 유지하기 어려운 서비스이다.
이 상황에서 회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흔히 불법 사이트들에서 자주 사용하는 도박이나 성인 사이트 광고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불법 MP3 다운로드는 왜 근절되었을까?
예전에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MP3 파일을 직접 복사하고 옮기는 일들이 빈번했다. 불법적으로 친구에게서 받은 MP3 파일을 재생하는 때도 부지기수였고, 오히려 멜론과 같은 합법적 구매경로를 이용해서 MP3 파일을 샀을 때는 DRM이라는 저작권 보호 조치 때문에 MP3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하기 어려운 등의 불편함이 컸었다.
그 이후 저작권 보호 조치가 없는 MP3 파일을 합법적으로 구매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무엇보다 음악을 더는 CD나 파일 등의 매체로 보유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스트리밍 받아서 재생하는 방식으로 가게 되면서, 그 편리함에 대중이 적응하면서 구독형 서비스가 보편화되었고, 이제는 음악을 자유롭게 듣기 위해서 한 달에 몇천 원 남짓한 비용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나는 OTT 서비스가 아직도 과도기적 위치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멜론이나, 벅스, 지니 등의 음악 서비스는 어딜 가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대부분의 노래를 항상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보통 하나만 구독하지만, OTT는 소위 그 OTT 채널에서만 독점적으로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흥행에 따라서 여러 곳에 가입해서 이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보기 위해서 오징어 게임만 사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 한 달 치 넷플릭스 구독을 해야 하는 상황이 현재의 과금 체계이다.
서서히 국내 OTT 업체들을 시작으로 구독(subscription) 모델이 아니라 개별 구매(pay-per-view)형식의 구매가 활성화되면 과도한 구독 비용의 문제도 사라질 것으로 본다. 지금은 각 OTT업체가 헤게모니 다툼을 하는 상황이지만, 통신사에서 각자의 기지국을 로밍(roaming)해서 사용하는 형태로 진화한 것처럼, OTT업체들도 합종연횡의 시간이 올 것은 자명해 보인다.
또한 누누티비는 인터넷상에서 웹사이트 형태로 제공되고 있고, 구글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의 앱스토어에, 모바일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앱으로는 서비스하기 어렵다. 구글이나 애플에서 본인들의 스토어에 등록시켜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접근성 측면에서 실제 OTT업체가 서비스하는 것들의 편의성에 근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멜론과 같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쓰는 이유 중에는 그런 앱의 편의성도 있는 것처럼, OTT 업체들도 최근 젊은 세대 소비자들이 단순히 뭔가를 공짜로 쓰는 것만을 원한다기보다는 돈값을 하는 서비스에 대한 지불 의향도 상당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불법 근절 노력에 더해 편의성 개선에 더 매진할 필요도 있다.
앞으로 콘텐츠 산업의 주 수익이 어디서 나올까?
또 한 가지 짚어봐야 할 것은 생각보다 시청 그 자체가 콘텐츠 산업의 주 수입원이 아닌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가수가 CD를 어떻게든 팔고 방송에 출연해야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굿즈 판매나 대규모 콘서트, SNS상의 PPL 등이 주 수입원이 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음악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많이 듣게만 되면 파생되는 영향력이 생겨가는 상황이다.
영상 콘텐츠도 앞으로는 더 많은 부가가치가 콘텐츠 그 자체의 유통보다는, 부가적인 영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어떤 콘텐츠가 합법적으로 500만 명이 시청하고, 불법적으로 200만 명이 시청하고, 다른 콘텐츠는 합법적으로 300만 명이 시청하는 대신 1,000만 명이 불법적으로 시청한다면, 그 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모는 차에 대한 PPL 비용을 자동차 회사에서는 어떤 쪽에 더 내고 싶어 할까?
누누티비는 명백하게 불법이고 그것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콘텐츠 산업에 있어서 불법적 유통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한 노력에만 집중하다가 검열을 과도하게 확대해서도 곤란하다. 어차피 콘텐츠의 불법적 유통은 100% 막을 수 없다. 하다못해 북한 사람들이 목숨 걸고 USB에 담아서, DVD에 담아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도 불법 유통이 아닌가.
인터넷은 인프라이다.
인터넷은 고속도로와 같은 인프라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속도로에는 다양한 차량이 다닐 수 있고, 그 안에는 폭주족도 있고 대포차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범법자들을 잡기 위해 고속도로 모든 구간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요금소와 나들목에서 불시검문을 한다면 고속도로 자체의 기능이 망실되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벌인다면 그 행위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확실한 처벌, 그들이 유발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
때로는 운영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수사가 난항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행정편의주의만으로 영장과 사안별 사법부의 판단 없이 임의로 행정부에 의해 남발되는 검열 조치와 사업자에 대한 의무 부여는 인터넷 산업 전반에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정치권이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정책이나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
학생들이 신분증을 위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나이를 속이고 주류나 담배를 구매했을 때, 나이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게 주인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종종 언급된다. 이런 비합리적인 제도가 유지되는 것은 말 그대로 학생들을 일깨우는 것보다 업주들을 쪼아서 책임을 지우는 것이 낫다는 행정편의주의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CDN 사업자를 쪼아서 검열을 확대하는 방법보다는 실제로 신분을 속이고 술을 산 청소년을, 아니 누누티비를 운영하는 운영자를 찾아서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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