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오락가락 ‘정책 혼선’에 민심 출렁… 尹, 당정에 ‘소통 강화’ 경고장
입력 : 2023-03-28 06:00:00 수정 : 2023-03-28 09:50:36
곽은산·유지혜 기자
尹 “모든 정책 당정 협의” 지시… 與·대통령실 ‘핫라인’ 가동
‘69시간 근로’ 오락가락… 민심 악화
학제 개편·비동의 간음죄 이은 역풍
尹, 28일 국무회의 직접 주재 예정
김기현 “밀도 있고 신속하게 협의”
새 지도부에 ‘심기일전’ 당부할 듯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내각과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당정 협의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주 최대 69시간 근무로 논란을 야기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등으로 여론이 악화한 것을 의식해 당정 소통을 강화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당정 정책 공조를 위한 ‘핫라인’도 곧 가동하기로 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등에 대한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법률안과 예산안을 수반하지 않는 정책도 모두 당정 간에 긴밀히 협의하라”면서 “그 과정에서 국민 여론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윤 대통령 지시는 최근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두고 ‘주당 69시간’, ‘주당 60시간’ 등 혼선이 이어지면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민심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윤 대통령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논란으로 청년층 반발을 산 과정에서 당정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홍보에서 미숙함이 드러났다며 아쉬움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이번 지시를 통해 정책 발표 전 단계부터 국민 눈높이를 고려한 당정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져 여론 수용성을 높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28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도 당정 협의 강화를 주문하는 메시지를 낼 예정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국무회의에선) 오늘 수석비서관회에서의 언급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이어질 것”이라며 당정 협의 강화를 위한 대통령의 주문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당초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할 차례지만 윤 대통령이 이런 당부를 위해 직접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대표 역시 당 차원의 당정 소통 강화를 위한 다짐과 복안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새 지도부가 출범한 만큼 당정 정책 협력을 강화해 심기일전하자는 차원이다.
머리 맞댄 당정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새 지도부와 대통령실·정부의 첫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김기현 대표(왼쪽 줄 가운데)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국민의힘 박대출 신임 정책위의장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 간 당정 정책 협력을 위한 핫라인도 당정 간 소통을 긴밀히 해 국민 의견을 온전히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의지가 실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박 의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주요 당직 인선이 마무리되는 것과 맞물려 핫라인 가동도 본격적으로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당정 협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밀도 있고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 대응과 관련해서도 이날 한 총리와 가진 주례회동에서 “긴밀한 당정 협의를 통해 의견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고 이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석열정부는 지난 1년간 정책을 발표했다가 반대 여론에 부닥치면 철회하는 모습을 몇 차례 보였다. 출범 두 달여 만에 교육부가 내놨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 개편안이 학부모들과 교육·보육 관련 단체들, 전문가들의 거센 비판에 휩싸였던 것이 시작이다. 설익은 정책이 충분한 논의나 여론 수렴 없이 발표되면서 역풍을 맞았다. 교육부는 정책 발표 11일 만에 관련 정책을 백지화했고,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취임 34일 만에 사퇴했다.
올해 들어서는 ‘비동의 간음죄’가 부처 간 엇박자로 논란이 됐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월26일 법무부와 함께 형법상 강간 구성 요건을 ‘폭행과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가부 발표가 나오자 법무부는 “비동의 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며 반박했고,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가부는 브리핑 9시간 만에 개정 계획이 없다고 발표 내용을 뒤집었다.
최근 불거진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논란은 사회 초년생 등 청년층을 중심으로 반발을 키웠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면서 현행 노동 시간을 주 69시간까지 늘리는 내용의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와 여당은 ‘일이 많을 때는 주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적을 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 커졌다. 이후 윤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 의지를 표하며 사실상 또다시 정책이 철회된 모양새다.
곽은산·유지혜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