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세계 첫 ‘12나노 D램’ 양산… 숫자가 작을수록 좋다던데 반도체 기술, 후퇴한건가요
이해인 기자
별 스토리 • 8시간 전
삼성전자가 최근 세계 최초로 12나노급 D램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나노(㎚)는 10억분의 1미터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초미세 단위를 뜻합니다. 모래의 100만분의 1,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수준이죠.
반도체 기술 수준을 가늠할 때 나노를 씁니다. 반도체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인 트랜지스터에는, 전류를 흘리거나 끊는 게이트(Gate)가 있습니다. 이 게이트 길이를 나노 단위로 재서 ‘○나노 반도체’라고 표현합니다. 이 게이트 길이가 짧아질수록 집적도가 높아져 동작 속도, 생산성도 좋아집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대만 TSMC를 제치고 3나노 파운드리(위탁생산) 양산에 처음 성공했다는 뉴스를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작년엔 첨단 기술이 3나노라더니 12나노로 후퇴한 건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이는 반도체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3나노 파운드리가 12나노 D램보다 더 미세하고 뛰어난 공정일까요. 최리노 인하대 교수는 “그렇게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며 “시스템반도체에 적용되는 나노 표기법은 더 이상 게이트 길이를 뜻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게이트 길이를 계속 줄이다 한계에 다다르자 트랜지스터 구조를 평면에서 3D 입체로 바꾼 핀펫(FinFET) 기술을 도입하면서부터입니다. 삼성은 14나노부터, TSMC는 16나노부터 적용했습니다. 더 이상 게이트 길이를 줄이지 않고도 성능을 높일 수 있게 된 거죠. 그럼에도 반도체 기업들은 게이트 길이와 무관하게 성능 개선이 이뤄질 때마다 마케팅 목적으로 5나노, 3나노 식의 명칭을 붙이고 있습니다. 각 사별 기준이 다르다 보니 똑같은 나노라도 성능이 다른 문제도 발생합니다.
D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D램에선 게이트의 물리적 거리가 일부 유효하지만, 그 외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반영된 수치가 현재의 나노 표기”라며 “D램과 시스템 반도체는 구조가 완전히 달라 단순히 나노만으로 동일 비교할 순 없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학계에선 나노 대신 반도체 제조 기술의 발전을 제대로 측정·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