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아시아나, 문 열려 20억 날렸다…항공기 테러男에 청구하나
입력 2023.05.29 16:54
업데이트 2023.05.2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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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기자
김하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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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중이던 여객기의 비상문을 승객 힘으로 열어젖힌 아수라장이 빚어지면서 ‘어떻게 하늘에서 비행기 문이 열리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이어지고 있다. 문 열림 사고로 인해 수십억원 대 피해를 보았을 것으로 추산되는 아시아나항공은 해당 기종의 비상구 좌석 판매를 무기한으로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28일 오후 대구국제공항 계류장에 비상구 출입문이 열린 채 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의 비상 출입문과 비상탈출 슬라이드가 수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후 대구국제공항 계류장에 비상구 출입문이 열린 채 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의 비상 출입문과 비상탈출 슬라이드가 수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비행 중이던 항공기 출입문, 어떻게 열렸나
이번 사고가 발생한 유럽 에어버스의 A321-200기종은 ‘여압방식', 즉 기내·외의 기압 차를 이용해 출입구 문이 개폐된다. 문제는 비행 고도가 약 1000피트(약 300m)까지 낮아지면 비행기 밖 대기압과 기내의 기압 차가 줄어들어 문이 열릴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사고 역시 착륙 1~2분 전 약 700피트(213m) 상공에서 벌어졌다. 착륙 직전인 탓에 승무원 역시 자신의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다만 일정 고도 이상에서 날고 있을 때는 사람의 힘으로 출입문을 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29일 “압력 차이가 워낙 커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된다”며 “약 15t의 힘이 가해져야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항공기의 비상문 개폐 방식은 크게 ‘핀방식’과 ‘여압방식’으로 구분된다. 이번 문 열림 사고가 벌어진 기종은 여압방식이고, ‘비행 중 잠금장치(Lock actuators)’가 없는 형태다. A321-200기는 아시아나가 운항하는 비행기 중 가장 작은 기종으로 주로 국내 노선과 해외 단거리 노선에 14대가 운영된다. 상대적으로 오래된 기종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에어버스 A321-200기를 보유한 회사는 아시아나와 아시아나 계열사가 사실상 유일하다. 사고 기종의 후속 모델인 ‘A321-네오’은 여압방식이지만, 비행기가 땅에 닿기 전까지는 승객이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없는 핀 장치가 추가돼있다. 항공기 바닥의 랜딩기어에 땅인지 공중인지를 구분하는 장치가 있는데, 지상에 닿았는지 아닌지에 따라 핀이 박히거나 빠지는 방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운항 중인 미국 보잉사 항공기는 모두 이 같은 ‘핀방식’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비상 탈출 가능해야 비상구… 누구나 쉽게 열어야”
이렇다 보니 일부 기종에 대해서는 승객들이 문을 열기 더 어렵게 잠금장치를 강화하거나 다른 개폐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항공업계 전문가 및 관계자들은 “비상시에 승객들이 쉽게 탈출할 수 있어야 비상구”라고 입을 모아 반대한다.
특정 개폐 방식이 더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고, 방식마다 장‧단점이 확연한 것뿐이어서, '여압방식이라고 더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에서다. 핀 방식도 핀이 고장 났을 때는 아예 개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한 항공 전문가는 “핀 고장으로 핀이 안 빠진 상황에서 화염에 휩싸인다든지 다른 형태의 이상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천편일률적으로 특정 방식이 더 낫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수십억 손해 입은 아시아나, 비상구 좌석 안 판다
이번 문 열림 사고로 아시아나 항공이 입은 피해는 최소 20억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게 항공 업계 추산이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경첩 등 비상구 문에 대한 수리 ▶뜯겨나간 비상 탈출용 슬라이드(미끄럼틀처럼 펼쳐지는 에어백)에 대한 수리 ▶대구에서 운행이 중단된 항공기를 모 기지(인천‧김포)로 이송하기 위한 경정비 및 비파괴검사 비용 등을 모두 합한 비용이다. 복수의 항공 업계 전문가는 “승객 이모씨에 대한 구상권 청구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하지만 이 역시 국토교통부 조사 및 수사기관의 판단 이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시아나항공은 문 개방 사고가 난 기종 ‘A321-200’ 14대 전체에 대해 비상구 앞자리 판매를 지난 28일 0시부터 전면 중단했다. 같은 기종을 6대 운영 중인 에어서울도 비상구 앞 좌석 판매를 29일 오전 0시부터 중단했다. 9대를 보유 중인 에어부산은 비상구 좌석 판매 여부를 내부 검토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피해자 보상 대책으로 병원으로 이송된 9명의 승객에 대한 치료비를 전액 지급했다. 트라우마 등 사후 피해에 대한 온‧오프라인 접수도 받고 있다. 지난 28일까지 2건이 접수됐다고 한다. 당시 탑승한 승무원들에 대해서는 사고 당일부터 근무에서 제외하고 정서 관리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한 승객이 대구공항 상공에서 비상문을 강제로 개방해 승객들을 공포에 떨게 한 가운데 승무원이 비상문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사진. 뉴스1
한 승객이 대구공항 상공에서 비상문을 강제로 개방해 승객들을 공포에 떨게 한 가운데 승무원이 비상문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사진. 뉴스1
전 아시아나항공 기장이었던 정윤식 카톨릭관동대 항공대학장은 “비상구 좌석 판매에 제한을 두거나 승무원을 비상구 인근에 추가 배치하는 것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비상구 문에 대한 개조 작업 등 안전 강화 조치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또 “이런 문 열림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승객들은 안전벨트를 밀착시켜 매고 있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황호원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법학과 교수(한국항공보안학회장)는 “비행기 운항 중 승무원들은 특별사법경찰관 권한이 있고 승객들도 역시 승무원들의 요청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비상구 좌석에 대한 사전교육을 강화하는 등 비행기 보안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