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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무트 대혈전, 처참한 소모전이 남긴 것[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박영서 기자

입력: 2023-05-25 23:26

 

 

 

 

'고기분쇄기' 방불, 양측 수많은 인명 손실

와인과 장미로 유명한 도시가 폐허로 돌변

포병과 공군력에서 우세했던 러시아 승리

우크라, 나토지원 추가전력으로 반격 준비

소모전 돌입한 상황, 휴전만이 유일한 희망

 

 

바흐무트 대혈전, 처참한 소모전이 남긴 것[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이나 전쟁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가 막대한 희생 끝에 승리를 공식 선언했다. 서방 언론들이 우크라이나군이 우세하다고 줄곧 보도했었지만 결과는 러시아의 판정승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체면을 지키게 됐다. 그러나 '상처 뿐인 영광'이다. 전투는 피비린나는 소모전이었다. '고기 분쇄기'(meat grinder)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갈아 넣어졌다. 그럼에도 또 다른 전투가 이어질 것이다. 전쟁의 종착역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예뻤던 도시가 잿빛 폐허로

 

바흐무트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의 중심 도시다. 인구는 약 8만명이다. 1571년 러시아 제국이 바흐무트강 이름을 따서 바흐무트 요새를 세움으로써 도시의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에는 소금·석고 광산으로 유명했었다.

 

옛 소련 시대에는 '아르툐몹스크'로 불렸다. '아르?'이란 별칭을 가졌던 볼셰비키 지도자이자 극작가·시인 표도르 안드레예비치 세르게예프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후 탈공산화 바람이 불면서 도시 이름은 다시 바흐무트로 환원됐다.

 

바흐무트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울창한 숲과 산, 호수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스파클링 와인 산업이 성행하고 장미꽃도 많이 피어 '와인과 장미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당 등 역사적 유적지도 많다. 그래서 관광지이자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특히 바흐무트는 도네츠크 지역의 교통 허브다. 주요 철도 노선과 고속도로가 교차 통과한다. 이는 평화 시에는 호재지만 전쟁이 터지면 악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바흐무트는 동부전선의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했다. 바흐무트가 최대 격전지가 된 이유다. 격전이 일어나면서 400여년 된 도시는 완전히 파괴됐다. 번성했고 아름다웠던 도시는 잿빛 폐허로 변했다.

 

 

 

◆공중 전력과 포 지원이 용병 공격에 시너지

 

러시아는 바흐무트를 장악하면 도네츠크 지역의 나머지 지역을 공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돈바스 지역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바흐무트 전투에서 승리하면 군의 사기를 높이면서 전쟁 교착 상태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 전쟁의 흐름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바흐무트 사수에 나섰다.

 

전투는 작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양측 모두 전쟁의 명암을 가르는 전투라 여겨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러시아는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을 선봉에 세워 공격했다.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포병 전력이었다. 포병은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불행히도 우크라이나는 포병 전력에서 열세였다. 러시아는 곡사포, 자주포, 다연장 로켓 발사기를 총동원해 우크라이나군 방어선을 집중 포격했다.

 

러시아의 우세한 공군력도 한 몫 했다. 러시아 폭격기는 끊임없이 하늘에서 도시를 폭격했다. 전투기와 헬기도 공중지원을 했다. 보병 중심인 용병들은 근접전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러시아군 공중 전력과 포 지원이 용병들의 공격에 시너지를 일으켰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바흐무트를 점령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방송들은 러시아 군인들이 "승리했다"는 구호를 외치며 백·청·홍색의 3색 러시아 국기와 바그너 그룹의 검은색 깃발을 파괴된 건물 위에 게양하는 모습을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해방 작전'이 완료됐다면서 바그너 용병과 자국군을 치하했다.

 

프리고진은 "다음달 1∼10일까지 점령지를 러시아 정규군에 넘기고 바그너 부대는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러시아군은 바후무트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고기 분쇄기'에 갈아진 병사들

 

약 10개월의 전투는 격렬했고 양측 모두 많은 손실을 입었다. 프리고진에 따르면 바흐무트 작전 기간 중 바그너 부대의 최대 병력수는 5만명 정도였다. 그는 이만한 병력으로 8만2000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군을 상대했다고 주장했다. 친러 정치전문가 콘스탄틴 돌고프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정규군을 대신해 본격적으로 바흐무트 점령 작전에 돌입한 지난해 10월 이후 우크라이나 군인 약 5만명이 전사했고, 5만~7만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바그너 그룹에선 계약제 용병 1만명, 러시아 교도소에서 차출했던 죄수 1만명을 포함해 2만명이 전사했고, 약 3만명이 다쳤다"고 소개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바그너 부대는 우크라이나 군대에 비해 전사자는 약 3분의 1, 부상자는 약 절반 정도다. 또 그는 병력 보충을 위해 러시아 교도소들에서 5만명의 죄수를 차출한 사실을 시인하면서, 그중 1만명이 숨지고 1만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가 바흐무트에서 1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는 있지만 바흐무트 전투가 유혈이 낭자한 전투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바흐무트를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프랑스 베르덩에 빗댔다.

 

베르덩은 1916년 2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동안 독일군과 프랑스군 간 참호전이 지속되면서 최소 70만명의 전사자가 나온 곳이다. 치열한 소모전이 오늘날 바흐무트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바흐무트 점령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독일 베를린 점령에 비유했다. 1945년 4월 16일부터 5월 2일까지 베를린을 놓고 공방전이 벌어졌다. 4월 30일 히틀러는 자살했고, 소련군은 5월 1일 나치독일의 상징인 제국의사당 건물 꼭대기에 적기(赤旗)를 게양해 소련의 힘을 전 세계에 알렸다. 베를린 공방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알리는 전투였다.

 

 

 

◆전쟁의 끝은 어디인가

 

러시아군은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바후무트를 손에 넣었다. 러시아는 환호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더 큰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측은 대응 전략이 바뀌었을 뿐 전투에서 패배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격전지에서 빠져 나온 것은 맞지만 향후 포위공격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우크라이나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우크라이나의 긴 겨울은 끝나 진흙땅은 굳어졌다. 역공세의 시간이 온 것이다.

 

다만 공세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나토가 제공한 최신 탱크가 전선에 투입되겠지만 러시아의 핵 위험으로 인해 서방 국가들은 항공 지원을 꺼리고 있다.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F-16 전투기 제공을 수락하겠다고 밝혔지만 조종사를 훈련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1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 항공 지원이 없다면 가장 강력한 탱크라는 독일제 '레오파드 2'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역전 공세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소모전이 계속 이어진다면 휴전만이 기대해볼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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