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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지구’에 흑해협정까지 파탄…먹거리 물가 ‘초비상’
윤희훈 기자
입력2023.07.30. 오전 6:01 기사원문
UN 사무총장 “‘지구 열대화’ 시작”
러, 흑해협정 파기에 국제 곡물가 급등
국내 수급 상황도 악화일로
“곡물 수급 국가계획, 글로벌 불확실성 대응 가능한지 재검토해야”
“
The era of global warming has ended. the era of global boiling has arrived.
(지구 온난화의 시대는 끝났다. 지구가 끓는 시대가 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 7월 27일
”
이제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시기는 끝났다. 지구 곳곳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폭염과 폭우가 발생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후스 UN 사무총장은 지난 2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최근의 기후 이상과 관련해 ‘지구가 끓고 있다’고 표현하며, ‘지구 열대화’가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올해 7월 1일부터 15일까지 세계 평균 기온은 1940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 관측 이래 역대 가장 더운 7월이라는 얘기다. C3S는 “지난달 역시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이었다”며 “세계 평균 기온이 1991∼2020년 6월 평균치보다 0.53도 더 높았다”고 밝혔다.
세계 기상 정보 비주얼 맵인 어스널스쿨로 확인한 28일 오후 4시 한반도 주변 기온과 불쾌지수가 붉게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어스널스쿨 캡처
이상기후에 흑해협정 파기까지…국제 곡물가 급등
극단적 폭염·폭우로 인한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 예고된 상황에서 최근 ‘흑해곡물협정’ 파기라는 또다른 암초가 생겼다. 흑해곡물협정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단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재개하기 위해 지난해 7월 4개월 기한으로 체결한 협정이다.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 하에 흑해 항로를 통해 양국의 곡물과 비료를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는 동안 이 협정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그러다 러시아는 지난 17일 흑해곡물협정 종료를 선언했다.
흑해곡물협정 파기 이후 세계 주요 시장에서 곡물가격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5일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전 세계 곡물 가격이 최고 15%가량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국제시장에서 밀 가격은 강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평년의 경우 톤당 208달러 선이던 밀 국제 선물가격은 지난 25일 톤당 279달러를 찍었다. 직전 달(6월) 평균 가격(243달러)과 비교해도 14.8% 비싸다.
농식품부는 국내에서 사용하는 제분용 밀은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에서 수입하고 있어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흑해협정을 통해 물량을 조달하던 국가들이 우리의 수입선인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곡물 수입 경로로 옮길 경우 수요 확대로 수입가가 오를 수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도 “국제곡물 가격이 작년 수준으로 급등하고 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내년 밀가루 가격 상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오후 충남 청양군 한 비닐하우스가 폭우 피해로 무너져 있다. /연합뉴스
국내서도 공급발 식품 물가 ‘요동’
국내 사정도 녹록치 않다. 최근 수해로 채소류 가격이 급등한 데 이어 쌀과 우유 등 주요 식품의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26일 적상추(4㎏) 도매가격은 평균 7만3740원을 기록했다. 4주 전 가격(1만9740원) 대비 273.6%나 뛰었다. 같은 기간 시금치(4㎏) 가격은 1만8596원에서 5만2000만원으로 179.6% 올랐다.
우유의 원료인 원유(原乳) 가격도 오는 10월부터 기본가격이 ℓ 당 88원 오른다. 치즈와 연유, 분유 등 가공 유제품에 사용하는 원유 가격은 ℓ 당 87원 인상된다. 낙농진흥회는 27일 원유 기본가격 조정협상 소위원회 11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인상안에 합의했다. 이번 인상으로 ‘음용유용 원유’ 가격은 10월부터 ℓ 당 1084원이 된다.
원윳값 인상은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우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원윳값이 ℓ 당 49원 오르자 유업체들은 흰우유 제품 가격을 10% 가량 올렸다. 2600원대 제품이 2800원대가 됐다. 이번 인상으로 1ℓ 들이 흰우유 가격은 3000원을 상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내린 폭우로 전국에서 닭 74만마리가 폐사하면서 닭고기 가격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과잉 생산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던 쌀값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7일 발표한 ‘산지쌀값조사’를 토대로 농식품부가 단순평균 기준 가격을 산출한 결과, 산지 쌀 가격은 80㎏에 19만1408원을 기록했다. 10일 만에 가격이 1.3% 상승했다. 올해 들어 10일 단위 기준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근 시장에서 원료곡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유통업체가 매입을 늘렸고, 그 결과 쌀값이 오르고 있다”며 “올해 쌀이 나오는 수확기까진 쌀값이 꾸준히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비축물량 방출과 수입물량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 등을 통해 급한 불을 끄는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준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의 식량안보 위기를 유발하는 불확실성은 국제 정치와 기후 변화 등 시장 외적인 요인에서 비롯했다”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곡물 관련 국가 계획이 글로벌 불확실성 대응에 충분한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가용한 자원과 예산을 투입해 실현 가능한 자급 생산 역량을 갖추고, 주요 곡물의 해외 조달 및 비축 방식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희훈 기자 yhh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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