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바이든, 하와이 산불 13일만에 방문…주민들은 '손가락 욕' 날렸다
이승호 기자
입력2023.08.22. 오전 11:33 수정2023.08.22. 오후 12:39 기사원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여사가 21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이섬을 방문해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라하이나 지역의 원로들이 집전한 전통 의식에 참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들고 있는 것은 하와이의 '티(Ti)'란 식물로 만든 일종의 화환이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산불로 최소 114명이 숨진 하와이주(州) 마우이섬을 방문했다. 지난 8일 산불이 발생한 지 13일 만의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참사를 두고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라며 “하와이분들과 필요한 만큼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장기적 재건에 초점을 맞추고 모두가 재기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휴가지인 네바다주 타호 호숫가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으로 마우이섬의 카훌루이 공항으로 이동한 뒤, 전용 헬리콥터인 마린원으로 옮겨타고 이번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라하이나 지역을 방문했다.
그는 실종자 수색 상황 등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 사망자와 실종자를 위로하며 “자신도 가족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며 “가슴이 텅 비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하와이 마우이섬 라하이나 지역을 방문해 피해 주민 옆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하와이를 여러 차례 ‘하와이 왕국’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주민) 여러분이 원하는 방식으로 재건하기 위해, 여러분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겠다”며 (하와이의) 전통을 존중하고, 깊은 역사와 이 신성한 땅의 의미를 이해하며, 본질이 달라지지 않도록 재건하겠다”고 말했다. 라하이나가 과거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던 점을 고려한 발언이다.
이번 방문엔 디에나 크리스웰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 브라이언 샤츠 상원의원, 마지에 히로노 상원의원, 질 토쿠다 하원의원 등이 동행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마우이섬 방문은 미국 정부가 이번 산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뤄졌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산불 발생 다음 날인 9일 연방정부 차원의 긴급대응을 지시하고 상시 브리핑을 받았지만 주말 동안 휴가지인 델라웨어주 러호보스비치에 계속 머물렀다. 지난 13일에는 ‘마우이섬에서 사망자 수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할 말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언급할 것이 없다(No comment)”고 답해 비판을 샀다.
“신속 지원” 성명에도…일부 주민 ‘손가락 욕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하와이 마우이섬 라하이나 지역을 방문해 피해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를 의식한 듯 바이든 대통령은 휴가를 반납하고 마우이섬을 방문했다. 방문 하루 전엔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저는 (화재) 첫날부터 즉시 세 건의 화재 관리 지원금을 승인했고, 그린 주지사가 중대 재난 선언을 요청하자마자 서명했다”며 “행정부는 약 450명의 수색 및 구조 팀원을 포함해 1000명 이상의 연방 요원을 마우이 현지에 파견하는 등 범정부적인 대응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명 발표 직후 백악관은 그간 바이든 행정부가 초기 임대 지원금 340만 달러(약 46억원)를 포함해 마우이섬 화재 피해를 입은 2700여 가구에 총 820만달러(약 110억원)를 지원했다는 등의 구체적 내역을 ‘팩트 시트’(FACT SHEET·사실자료) 형태로 공개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연기는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과 구조대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보름 만의 늑장 대응이라며 "수치스럽다"고 비판했다. 로이터는 “라하이나 해변을 따라 이동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차량 행렬 곁에 몰린 지역 주민 중에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욕설을 퍼부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마우이 시장 “실종자 수 850명”
리처드 비센 미국 하와이 마우이 카운티 시장이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 라하이나 지역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편 리처드 비센 마우이 카운티 시장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 연방수사국(FBI)과 함께 실종자 명단을 정리했다”며 “현재 실종된 것을 추정된 사람이 850명”이라고 밝혔다. 비센 시장은 “처음 실종자 명단엔 2000여명 포함됐고, 조사 결과 1285명 이상이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화재가 발생한 이후 공식 실종자 수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까지 확인된 사망자 수는 114명으로, 지난 19일 발표 수치가 유지됐다. 비센 시장은 사망자 중 27명의 신원이 확인됐고, 이 가운데 11명의 가족에게 이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마우이 소방국에 따르면 지난 8일 섬 내 3곳에서 발생한 산불이 아직 진압되지 않은 상태다. 주요 피해지역인 라하이나의 산불은 90%, 올린다와 쿨라 지역의 산불은 각각 85% 진화됐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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