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몰라봤다!"... 진짜 기후악당은 초대형 산불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입력2023.08.22. 오전 3:01 기사원문
막대한 인명피해를 일으킨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 photo 뉴시스
요즘 우리에게 익숙해진 표현 중 하나가 '기후위기'다. 기후변화를 방관한 '너무 뜨거운' 대가일까. 지구촌이 역대급 고온에 펄펄 끓고 있는가 하면, 세계 곳곳에서 초대형 산불이 급증하고 있다. 이 초대형 산불의 연기 속에서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끼치는 물질을 새로 발견했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바로 '암갈색 탄소'다.
산불 연기 속 암갈색 탄소가 문제
산불은 복합적인 요소가 원인이 되는 현상이다. 잦은 가뭄, 높은 대기 온도, 낮은 상대 습도, 번개, 강풍 등을 통해 더욱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산불 위험도와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요소는 기온이다.
지구온난화로 높아진 평균기온은 산불을 키우는 원인이다. 지난해 1월 국립산림과학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온이 1.5℃ 높아지면 산불 기상지수는 8.6%, 2℃ 높아지면 13.5%가 증가한다. 산불 기상지수는 기온이나 습도, 풍속 등을 이용해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치화한 지표다. 산불위험 지수 등 지표를 계산할 때 기온의 가중치가 가장 높은 편이다.
실제로 이상고온은 참사로 번지고 있다. 지난 8월 8일(현지시간)에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될 하와이 마우이섬의 산불, 지난 5월 초 캐나다 서부 앨버타 지역에서 시작해 이웃 나라 미국에까지 피해를 입힌 캐나다 역대 가장 심각했던 산불, 2019년 발생해 2020년까지 약 1000만㏊의 숲을 태운 호주 산불, 지난해 시베리아에서 약 1600만㏊의 숲을 태운 러시아 산불 등이 대표적이다. 그야말로 '여기도 불, 저기도 불'의 막다른 형국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 역대 발생한 초대형 산불 10개 중 6개가 지난 1년 사이 일어났다. 자연적 산불의 발화 원인 중 하나는 번개다. 2020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수백 건의 산불이 동시에 일어났는데, 이 시기 캘리포니아주 전역에서 1만번 이상 내려친 번개가 원인이었다. 미국 퍼듀대의 연구에서는 대기의 온실가스 농도가 2배 증가할 경우 번개 치는 일수도 평균 2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8월 10일 미국 서부 지역에서 2019년 한 해 동안 번개로 발생한 3차례의 초대형 산불을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2019년 7월부터 8월 사이에 산불 현장의 지상 10㎞ 상공에서 항공기로 연기 샘플을 수집한 자료, 그리고 지상의 이동식 장비를 이용해 산불 현장과 약 3㎞ 떨어진 거리에서 연기를 모은 자료를 통해 산불의 성분을 분석한 것이다.
NASA는 분석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갈색 탄소보다 진한 '암갈색 탄소'라는 물질을 새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탄소 입자는 산불이 나거나 화석연료를 태울 때 불완전 연소하면서 나온다. 석탄·석유를 태울 때는 주로 '흑색 탄소(black carbon·검댕)'가 많이 나오고, 산불 등으로 초목이 탈 때는 '갈색 탄소(brown carbon)'가 더 많이 나온다.
흑색 탄소든 갈색 탄소든 탄소 입자는 태양빛을 강하게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이 때문에 흡수한 태양빛을 열로 바꿔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특히 흑색 탄소는 이산화탄소 다음 두 번째로 강력한 온난화 물질이다. 검은색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빛을 더 많이 흡수해 대기 중으로 방출하면서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킨다. 여름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으면 흰색 옷을 입었을 때보다 더 더운 것과 같은 이치다.
NASA는 흑색 탄소와 비교했을 때 산불이 내뿜는 암갈색 탄소가 기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암갈색 탄소는 예상보다 훨씬 더 지구온난화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흑색 탄소는 주로 태양빛의 가시광선을 흡수해 열을 지닌 적외선으로 전환시켜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반면 암갈색 탄소는 탄소 분자 하나가 흡수하는 태양빛의 양이 흑색 탄소보다 다소 적었지만 산불 연기 속에서 방출하는 열의 양은 흑색 탄소보다 4배나 더 많았다.
암갈색 탄소는 태양빛의 근적외선에서 자외선, 가시광선까지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해 열로 방출했다. 또 흑색 탄소는 태양빛을 흡수하는 능력이 하루 정도 지나 사라지는 반면 암갈색 탄소는 며칠씩 지속되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는 초대형 산불이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연구팀은 모의실험을 통해 북극 상공에 있는 암갈색 탄소의 온난화 효과가 흑색 탄소의 약 30%에 이른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NASA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에 실렸다.
UN "향후 20년 동안 산불 50% 증가할 것"
산불의 대형화와 빈도의 증가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코페르니쿠스 대기 감시 서비스(CAMS)'의 추정에 따르면, 2022년(12월 10일 기준) 전 세계 산불과 초목 화재로 14억4500만t의 탄소가 배출되었다. 이는 관측 시작(2003년) 이래 역대 최대 수치다.
NASA는 산불이 잦은 여름철에 더 많은 태양빛을 흡수하는 암갈색 탄소는 이른바 '되먹임 무한 순환'(피드백 루프)을 작동시킬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암갈색 탄소가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온난화는 더 많은 산불을 일으키고, 얼음을 녹이고, 폭염을 부르고, 그로 인해 다시 산불이 잦아지고, 산불이 또 많은 암갈색 탄소를 발생시켜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순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최근의 초대형 산불의 문제는 한 번 발화하면 쉽게 꺼지지 않고 다른 지역까지 퍼진다는 사실이다. 2019년의 호주 산불이 대표적인 예다.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인접한 뉴질랜드에 직접 영향을 미쳤고, 그 연기는 남미 대륙을 횡단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다시 호주로 귀환했다.
'호주 산불'이 이처럼 막심했던 까닭은 '화재적란운(火災積亂雲)'이 불씨를 옮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화재로 발생한 뜨거운 열과 연기, 재, 공기가 상승하여 수직으로 매우 높게 구름을 형성하면 비를 내리지 않으면서도 천둥 번개만 치는 '화재적란운'이 되어 다른 지역에 불씨를 마구 뿌리면서 화재 범위를 확산하게 된다. 일단 연기가 성층권에 진입하면 첫 발생지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전 세계 기상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전문가들은 산불 지역이 점점 북방 침엽수림(타이가)으로 이동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월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산불이 향후 20년 동안 50%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구 기후까지 바꿔놓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은 지금도 지구를 불태우고 있다.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산불이 우리의 일상이 되기 전에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탄소중립이 시급하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Copyright ⓒ 주간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IT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