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세상과 함께 진격의 K방산
요격 미사일 놔두고 “K9 급구”…우크라전 이후 벌어진 현상
카드 발행 일시2023.10.16
에디터
이철재
진격의 K방산
관심
자주포의 원조는 영국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최초의 자주포인 ‘건 캐리어 마크 I’을 만들어 실전에 투입했다. 1917년은 3·1운동 2년 전이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던 일제 강점기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안된 2023년. 한국은 자주포 원조 영국에 자주포를 수출하려 하고 있다.
1917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개발했던 '건 캐리어 마크 I'. 사진 위키피디아.
1917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개발했던 '건 캐리어 마크 I'. 사진 위키피디아.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12~15일 영국 런던에서 열렸던 방위산업박람회(DSEI)에서 차기 K9을 내놨다. K9A2. A는 개량(Advance)을 뜻하며, A2는 두 번째 개량이란 의미다. 영국 육군의 차세대 자주포 획득 사업인 이동 화력지원 체계(MFPㆍMobile Fire Platform)에 K9A2로 도전장을 내밀려 한다.
지난달 12~15일 영국 런던에서 열렸던 방위산업박람회(DSEI)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선보인 K9A2.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난달 12~15일 영국 런던에서 열렸던 방위산업박람회(DSEI)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선보인 K9A2.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은 배치를 시작한 1998년 당시 세계 최고 성능의 자주포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K9은 진화를 모색해야만 할 때가 왔다. K9은 2018년 A1으로 거듭났고, 이제 A2로 향하고 있다. K9A2는 K9의 미래이자, 더 높은 단계인 K9A3로 도약하는 뜀틀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적 기지 창문 안으로 쏙 들어갈 정도로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스마트 무기가 판치는 시대에 K9과 같은 자주포를 더 성능 개량해야 하느냐고.
글 싣는 순서
◦ 스마트전 시대도 포병 없인 지상전 불가
◦ 더 빨리 쏜다…분당 6발서 9발로
◦ 발사 자동화, 5명서 3명으로
◦ 돈 없다며 주저했던 에어컨 이젠 장착
◦ 심장 ‘파워택’도 국산화하다
◦ 자주포의 미래는 우주전함 주포?
스마트전 시대도 포병 없인 지상전 불가
1990년 걸프전에서 미국이 주도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일방적 승리를 거뒀다. 당시 요격 미사일인 MIM-104 패트리엇, 스텔스 폭격기인 F-117 나이트 호크, 장거리 정밀타격 순항미사일인 BGM-109 토마호크 등 3대 무기가 현대전의 양상이 정밀 타격전 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레이저로 유도되는 GBU-24가 목표물을 타격하는 모습. 이 같은 정밀유도무기를 포함하는 스마트 무기의 시대가 열렸다. 사진 미 국방부
레이저로 유도되는 GBU-24가 목표물을 타격하는 모습. 이 같은 정밀유도무기를 포함하는 스마트 무기의 시대가 열렸다. 사진 미 국방부
특히 토마호크 미사일은 적 레이더를 피해 지형을 따라 낮게 비행한 뒤 목표를 정확히 때려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땐 좌표만 입력하면 GPS 유도로 바로 목표로 날아가는 합동정밀직격탄(JDAM)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스마트 무기(Smart Weapon)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그러나 K9과 같은 포병 화력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 세계적으로 포탄 급구 현상이 벌어졌다. 적의 방어선을 돌파해 전진할 때, 반대로 적의 공세를 꺾어야 할 때 아직도 늘 포병 화력이 뒷받침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스마트 무기는 비싸다. 또 최전방 지휘관이 요청하면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바로 화끈한 화력을 지원할 수 있는 포병이 최전방 지상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라는 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재확인됐다.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은 “전장인식ㆍ네트워크ㆍ정밀타격 능력 때문에 포병 화력의 중요성이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정보화 기술이 재래식 탄약의 효과를 늘리고, 포병 화력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면서 더욱 많은 포병 탄약을 필요로 한다는 게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추세에 따르려면 K9은 반드시 진화해야 한다. 더 멀리, 더욱 빠르게 쏘도록 말이다.
더 빨리 쏜다…분당 6발서 9발로
K9은 2018년 K9A1으로 이미 한 번 탈바꿈했다. 기존 K9이 관성항법장치(INS)로만 위치를 확인했는데, K9A1은 GPS를 더해 신속도와 정확도를 높였다. 시동을 걸지 않아도 전자장비에 전력을 공급하는 보조동력장치(APU)도 달았다. 사격통제장치의 운영체제를 DOS에서 윈도로 업그레이드했다. 열상식 잠망경과 후방 카메라를 탑재해 주행 시 안전 확보에도 신경 썼다.
K9A2의 로봇암이 포탄을 집어 포신에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동영상 캡처
K9A2의 로봇암이 포탄을 집어 포신에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동영상 캡처
전반적으로 K9A1은 K9에 약간 손 본 수준이었다. 그런데 K9A1에 안주해선 안 될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과 유럽에서 사거리 100㎞ 등 차세대 자주포 기술 개발에 열중이면서다. ‘어어’하다 보면 K9이 화포 발전 흐름에서 뒤처지고, 자칫 세계 1위 자리를 내줄 수도 있게 됐다.
그래서 2016~2021년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손잡고 고반응 자동화 화포를 연구했다. 고반응 자동화 화포는 K9A2의 밑그림이다. 고반응 자동화 화포는 발사 속도를 분당 6발에서 9발로 높였다.
발사 자동화, 5명서 3명으로
이를 위해 탄약ㆍ추진장약의 장전을 완전 자동화했다. 고반응 자동화 화포는 사람의 손으로 하던 작업을 로봇팔이 대신 한다. 자동화 덕분에 K9A1은 포반장ㆍ사수ㆍ부사수ㆍ1번 포수ㆍ조종수 등 5명이 탔는데, 고반응 자동화 화포는 포반장ㆍ사수ㆍ조종수 등 3명으로 충분했다.
더 나아가 고반응 자동화 화포는 유사시 K77 사격지휘장갑차가 포병사격 지휘통제체계(BTCS)를 통해 원격으로 제어하거나 사격할 수 있게 돼 최소 2명으로도 운용할 수 있다. 승무원 수 감축은 가뜩이나 인구절벽의 여파로 병력자원 감소를 고민하고 있는 군 당국엔 묘안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여기에 K9A1에서 자체 무장인 12.7㎜ K6 중기관총을 쏘려면 사수가 포탑 위로 몸을 내밀어야만 했었는데, 고반응 자동화 화포는 자주포 안에서 원격사격체계(RCWS)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 RCWS에는 적외선 카메라가 달려 한밤중 4㎞ 안에 숨어 있는 적을 정확하게 사격한다.
돈 없다며 주저했던 에어컨 이젠 장착
에어컨ㆍ자동 소화장치도 고반응 자동화 화포에 새롭게 추가됐다. 특히 에어컨은 포병에 희소식이다. K9 내부는 여름철이면 섭씨 50도를 넘는 찜통더위다. 그런데도 군 당국은 그동안 예산을 이유로 에어컨 탑재를 주저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K9A2의 에어컨에 적합한 한자 성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로 수출하는 보병전투장갑차(IFV) 레드백은 고무궤도를 달았다. 사진 속 무한궤도가 강철이 아닌 고무다. 고무궤도는 무게가 가벼워 기동성을 높여주면서 소음을 줄여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영국에 제안할 K9A2의 궤도도 고무로 만든다. 군 당국은 비싼 고무궤도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로 수출하는 보병전투장갑차(IFV) 레드백은 고무궤도를 달았다. 사진 속 무한궤도가 강철이 아닌 고무다. 고무궤도는 무게가 가벼워 기동성을 높여주면서 소음을 줄여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영국에 제안할 K9A2의 궤도도 고무로 만든다. 군 당국은 비싼 고무궤도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난해 7월 제145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선 고반응 자동화 화포를 바탕으로 한 K9 자주포 2차 성능개량 사업, 즉 K9A2 사업이 확정됐다. 2조3600억원을 들여 올해부터 2027년까지 개발을 마친 뒤 배치를 시작해 2034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더 가볍게…고무궤도 자주포로 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영국의 MFP 사업에 제안하고 있는 K9A2는 한국형과 살짝 다르다. 무한궤도가 강철궤도가 아니라 고무궤도라는 점에서다. 고무로 만들었다고 K9A2 MPF의 궤도가 물렁물렁하거나 약하지 않다. 복합소재로 만든 고무궤도의 내구성(5000㎞ 주행)이 오히려 강철궤도(2000~3000㎞ 주행)보다 뛰어나다.
또 무게가 가볍고 소음이 적다. 궤도 무게가 줄어든 만큼 장갑에 보탤 수 있다. 승차감도 훨씬 좋다. 갈아 끼우는 작업도 고무궤도가 훨씬 더 수월하다. 다만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비싼 게 흠이다. 그래서 국산화를 추진 중이다.
심장 ‘파워택’도 국산화하다
방산업체인 풍산은 지난 8월 155㎜ 사거리연장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실전배치에 들어간다.
M75 병력수송장갑차(APC)의 파워팩 교환 장면. 엔진과 변속기를 하나로 만든 파워팩은 이처럼 야전에서 쉽게 갈아 끼울 수 있다. K9 자주포의 파워팩 국산화가 추진 중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M75 병력수송장갑차(APC)의 파워팩 교환 장면. 엔진과 변속기를 하나로 만든 파워팩은 이처럼 야전에서 쉽게 갈아 끼울 수 있다. K9 자주포의 파워팩 국산화가 추진 중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기존 155㎜ 포탄의 사거리는 40㎞인데, 이번에 개발한 사거리연장탄은 60㎞ 수준이다. 사거리연장탄은 항력감소(BB)탄에다 로켓추진(RAP)탄 기술을 더한 복합 추진제를 사용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 ADD와 풍산은 2027년을 목표로 최대 사거리 75㎞의 신형 복합 추진탄을 연구하고 있다. K9A2은 K9A1의 2배 가까운 75㎞의 최대 사거리를 확보하게 된다. 연평도에 배치된 K9으로 산을 통과하는 활주로로 유명한 북한 황해도의 태탄 비행장을 충분히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다.
K9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파워팩은 앞으로 국산화한다. 엔진과 변속기를 하나로 묶어 만든 게 파워팩이다. 전차ㆍ장갑차ㆍ자주포 등 군용 차량은 민간 차량과 달리 파워팩을 단다. 이렇게 하면 정비하기가 쉬워진다. 야전에서 엔진이나 변속기에 문제가 일어날 경우 바로 떼 새것으로 갈면 된다. 고장 난 파워팩은 후방으로 보내 고친 뒤 다시 쓸 수 있다.
현재 K9의 파워팩은 독일제다. 독일이 인권 문제로 K9의 튀르키예 수출에 딴지를 걸면서 현지 생산량이 결국 줄었다. 또 독일 때문에 중동 국가로의 K9 수출길이 막혔다. 국산 K9 파워팩은 이 같은 ‘독일 변수’를 사라지게 만든다. STX엔진이 K9 자주포 엔진 국산화 사업을 맡고 있다.
자주포의 미래는 우주전함 주포?
ADD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완전 무인화 ▶하이브리드 엔진 ▶발사 속도를 분당 9발에서 10발로 증대 ▶램제트 추진제로 날아가는 사거리 100㎞ 활공탄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K9A3 개발안도 검토하고 있다. 미래 전장을 대비해 차세대 자주포 논의도 시작했다. 사거리 100㎞ 이상의 움직이는 목표도 공격하는 정밀유도탄도 2030년대면 볼 수 있을 듯하다.
미국 해군이 연구했던 레일건의 시험발사 장면. 전자기력으로 금속 탄자를 쏘는 레일건은 사거리와 파괴력이 SF 영화급이다. 미 해군은 현재 레이건 개발 사업을 중지한 상태다. 사진 미 해군
미국 해군이 연구했던 레일건의 시험발사 장면. 전자기력으로 금속 탄자를 쏘는 레일건은 사거리와 파괴력이 SF 영화급이다. 미 해군은 현재 레이건 개발 사업을 중지한 상태다. 사진 미 해군
전기적으로 발생하는 플라즈마로 추진장약을 점화하는 방식의 전열화학포나 전자기력으로 금속 탄자를 날리는 레일건은 미래 자주포로 꼽힌다. 전열화학포ㆍ레일건은 SF 영화에서나 나오는 우주전함 주포급이다.
미국 해군이 연구하다 중단한 레일건. 사진 미 해군
미국 해군이 연구하다 중단한 레일건. 사진 미 해군
K9의 소요제기(무기가 필요하다고 제안)를 냈던 강대만 전 육군전력개발관리단장은 “앞으로 K9A3나 차세대 자주포는 미사일같이 먼 거리의 목표를 정밀타격하는 스마트 무기로 발전할 것”이라며 “스마트 무기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K9은 산악 지형의 한반도에서 산 뒤에 숨은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고 말했다.
에디터
이철재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seajay@joongang.co.kr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와 군사안보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한반도와 주변의 안보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빠르고 정화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격주로 '이철재의 밀담'으로 여러분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또 매달 '전쟁과 평화'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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