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세상과 함께 진격의 K방산
천궁 3차 시험 앞둔 어느 날, 어민이 건져온 놀라운 잔해
카드 발행 일시2023.11.13
에디터 이철재
한국은 미사일 강국이다. 중거리 방공체계인 천궁Ⅱ가 한창 배치 중이며, 장거리 방공체계인 L-SAM이 곧 양산될 예정이다. 또 ‘현무’라 불리는 지대지 미사일이 Ⅰ,Ⅱ, Ⅲ, Ⅳ, Ⅴ 등 줄줄이 나오고 있다. 특히 탄두 무게가 8t 이상으로 추정되는 현무Ⅴ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나오는 운동 에너지로 북한의 지하시설이 땅속 깊숙이 있더라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지난 9월 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최종 리허설에서 고위력 탄도미사일이 움직이고 있다. 이 미사일은 북한의 지하시설을 파괴하는 용도의 현무Ⅵ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지난 9월 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최종 리허설에서 고위력 탄도미사일이 움직이고 있다. 이 미사일은 북한의 지하시설을 파괴하는 용도의 현무Ⅵ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현무 미사일은 2021년 미사일 지침이 폐기될 때까지 미국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가운데 알음알음 개발하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은 1977년 취임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전력공백을 우려해 핵무기와 이를 실어 나를 미사일을 개발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한 뒤 얼마 안 된 1982년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미사일 연구 인력을 대거 내보낸 배경엔 미국의 압력도 있었다.
오늘날 한국이 자랑하는 미사일 기술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구에 매진한 ADD와 최고의 미사일을 생산한 관련 업체의 노력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찬사를 받을 대상이 더 있다. 서해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어민들이다.
이들의 말없는 희생 때문에 한국이 미사일을 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어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글 싣는 순서
◦ 잊지 못할 2011년 5월 20일
◦ “천궁 개발 후 선진국 견제 시작”
◦ 흔쾌히 어장 내준 어민들이 애국자
◦ 어망에서 건져 올린 미사일 잔해
◦ 절대 놓치지 않는 그물
◦ 확장억제란 강력한 요격 미사일
잊지 못할 2011년 5월 20일
천궁 개발팀이 결코 못 잊는 날이 있다. 2011년 5월 20일. 이날 천궁의 사격 시험이 있었다. 마지막 사격 시험은 아니었지만, 여길 통과하면 명중률 요구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미사일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사일이 표적을 포착해 정상적으로 추적하고 있다는 신호가 떴다. 잠시 후, 레이더 화면에서 미사일과 표적이 동시에 사라졌다.
공군 제1미사일방어여단이 지난달 26일 천궁Ⅱ 발사 훈련에서 임무 절차를 연습하고 있다. 사진 공군
공군 제1미사일방어여단이 지난달 26일 천궁Ⅱ 발사 훈련에서 임무 절차를 연습하고 있다. 사진 공군
“야~ 직격이다!” 환호성이 터졌다. 현장에 있던 개발팀은 감격에 겨워 서로를 껴안았다. 항공기를 요격하는 천궁Ⅰ이 사실상 이날 완성됐다.
천궁Ⅰ은 2002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러시아로부터 레이더를 배워 왔지만, 미사일은 한국 기술을 위주로 개발됐다. 옆으로 분사해 방향을 급하게 바꿀 수 있도록 해주는 측추력기(TVC)가 난제였다. 처음 시도하는 기술이라 시행착오가 따랐다. 시험 발사했는데 미사일이 빙빙 돌아 안전을 위해 폭파시킨 적도 있었다.
개발팀의 기쁨도 잠시였다. 2012년 천궁Ⅰ의 개발을 종료하기 전에 이미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천궁Ⅱ의 개발이 결정됐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2006년 광명성 인공위성 발사와 준중거리탄도미사일(MBRM)인 노동 미사일(화성-7형) 네 발 발사, 2010년과 2012년 열병식에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무수단 미사일(화성-10형) 공개 등 탄도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다. 미국으로부터 MIM-104 패트리엇 미사일을 사 왔지만, 당시 한국이 보유한 기종은 탄도미사일 요격이 어려웠다.
독자적 탄도미사일 요격 미사일이 절실했다. 바로 개발팀의 야근과 휴일 근무가 이어졌다. 그러나 천궁Ⅰ개발 단계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을 어느 정도 고려했기 때문에 천궁Ⅱ는 5년 만인 2017년 개발을 끝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개발이 쉬웠다는 얘기는 아니다.
2016년 2월 23일, 천궁Ⅱ의 첫 탄도미사일 요격 시험이 있었다. ADD 내부에선 너무 이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개발팀 관계자는 “위에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겠냐’고 세 번 물었는데, 매번 ‘결과를 담보할 순 없지만, 엔지니어 관점에서 실패할 단서를 못 찾았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명중. 이 관계자는 “ADD 모두가 기뻐했지만, 탄도미사일 개발팀은 우리를 축하해 주면서도 ‘우리가 만든 무기도 요격될 수 있구나’라며 내심 섭섭해 하더라”며 웃었다.
“천궁 개발 후 선진국 견제 시작”
2017년 천궁Ⅱ가 5년 만에 개발을 끝냈고, 2018년엔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의 하나로 선정됐다. ADD의 개발팀 관계자의 말이다. 현재도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이기 때문에 익명으로 전한다.
ADD의 무기 개발은 늘 절박하다. 미국은 무기를 팔려고 개발한다. 그러나 한국은 살아남기 위해 개발한다. 내 가족과 지인, 우리 사회가 북한의 핵·미사일을 머리 위에 놓고도 발 뻗고 편히 자야 한다. 한반도 전장은 너무 좁다. 방어해야 할 곳이 너무 가깝고, 대응 시간이 너무 짧다. 시간적 공백과 공간적 공백이 거의 없다. 발견하는 즉시 바로 쏴야 하고, 반드시 맞혀야 한다. 그래서 절박할 수밖에 없다
천궁을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인 LIG넥스원의 최관범 연구소장은 “천궁을 개발하고 난 뒤 연구소나 공장을 견학하지 못하게 하는 등 선진국의 견제가 시작됐다”며 “그래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흔쾌히 어장 내준 어민들이 애국자
지난 6월 30일 충남 태안의 ADD 안흥 종합시험장에서 L-SAM의 시험발사가 있었다. 당시 시험 발사가 예정 시간을 20분 정도 넘겼다. 조업 중인 어민들이 시험발사 해상에서 빠져나가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ADD 관계자는 “미사일 시험발사에서 기상 상황보다 어민들 협조가 가장 큰 변수”라며 “어민들이 협조를 잘 안 해줘 시험발사를 못 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천궁을 생산하는 LIG넥스원 기술진이 미사일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LIG넥스원
천궁을 생산하는 LIG넥스원 기술진이 미사일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LIG넥스원
안흥 종합시험장은 대한민국 미사일의 성지(聖地)다. 1978년 국산 미사일 1호 백곰을 시작으로 늘 이곳에서 미사일 시험발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안흥 종합시험장이 있는 서해는 대륙붕이 넓고 플랑크톤이 풍부해 고기가 많이 잡히는 어장이다. 수많은 어민들의 생계가 달린 터전이다.
그들에게 국가 안보를 이유로 희생만을 강요할 순 없다. 그래도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높아지면 어민들이 흔쾌히 어장에서 나간다고 한다. ADD 관계자는 “공역이 좁아 미사일 시험 땐 늘 안전 문제 때문에 긴장한다”며 “그래도 파편 낙하 관련 연구를 많이 해 나름대로 성과도 있다”고 말했다.
어망에서 건져 올린 미사일 잔해
어민이 천궁 개발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천궁은 2004년 1차, 2차 사격 시험에 실패했다. 개발팀은 부품의 오작동과 설계 오류가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2005년 3차 사격 시험을 앞두고 어민 한 명이 안흥 종합시험장 앞바다에서 건졌다며 미사일 잔해물을 ADD에 전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잔해물은 1차 사격 시험 미사일에서 나온 것이었다.
개발팀은 철저히 분석해 오작동 원인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를 고쳐 3차 사격 시험엔 성공했다. 천안함 피격 ‘1번 어뢰’를 건져낸 대한민국 어민의 실력이 어디 가겠나.
어민들이야 설득할 순 있지만, 말로는 통하지 않을 장애물이 안흥 종합시험장 근처에 생길 조짐이다. 태안군이 해상 풍력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ADD의 미사일 개발팀이 해상 풍력 발전소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ADD 관계자는 “미사일 성능에만 집중해 쏘고 싶다”고 한탄했다.
절대 놓치지 않는 그물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ㆍ하늘의 그물은 굉장히 넓어서 엉성해 보이지만 절대 놓치지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문구다.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체계의 목표가 그러하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2023년 현재 KAMD 체계에서 고도 15~40㎞는 패트리엇이, 15~20㎞는 천궁Ⅱ가 담당한다. 고도 40~150㎞는 주한미군이 운용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가 방어한다. 다층의 방어망을 중첩하지만, 좀 느슨한 편이다.
그러나 2030년대 중반이면 고고도를 맡은 L-SAM(40~70㎞)Ⅰ과 Ⅱ(40~150㎞), 요격 고도가 높아진 천궁Ⅲ(15~40㎞)가 각각 나오면 독자적 방공망이 더 단단해진다. 여기에 장사정포 요격체계(LAMD)까지 배치되면 비교적 촘촘한 미사일 방어망을 완성하게 된다.
확장억제란 강력한 요격 미사일
그러나 미사일로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보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더 쉽다(ADD 관계자)고 한다. 그래서 한 발의 적 탄도미사일에 보통 두 발의 요격미사일로 대응한다. 종심이 짧고 인구가 밀집한 한국은 단 한 번의 요격 실패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고 전 국토를 KAMD 체계로 도배하기엔 너무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한국은 ① KAMD에다 ②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려 할 때 선제적으로 타격하는 킬체인(Kill Chain) ③ 북한이 핵·미사일로 공격하면 한국이 보복하는 대량응징보복(KMPR)을 더해 3축 체계를 만들었다. 다리가 세 개인 솥(鼎)에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무너지듯 3축 체계는 서로 단단하게 엮여 있다.
여기에 미국의 ‘핵우산’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외교·정보·경제적 수단도 함께 사용하는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등으로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려 한다. 국제사회와 연대해 북한을 핵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결국 핵·미사일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
천궁은 북한 핵·미사일 억제의 든든한 뒷배다. 진격의 K방산을 이끌 기대주로 떠오를 날이 곧 멀지 않다.
에디터
이철재
이철재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seajay@joongang.co.kr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와 군사안보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한반도와 주변의 안보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빠르고 정화하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격주로 '이철재의 밀담'으로 여러분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또 매달 '전쟁과 평화'로 찾아뵙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