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세상과 함께 비하인드:론스타 그날
“어쭈, 이놈 수사 좀 하네”…尹 최애 후배의 파격 등장 ②
카드 발행 일시2023.05.02
에디터
박진석
비하인드:론스타 그날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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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도 물길을 따라 왔다. 수변 꽃봉오리의 마지막 기지개를 도와주던 봄은 큰 강의 위와 아래를 동시에 가로지르는 두 다리를 타고 상륙했다. 이내 대로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너울너울 흘러가더니 마지막 힘을 짜내 고갯마루까지 기신기신 올라갔다. 하지만 웬일인지 선뜻 그걸 넘지 못한 채 그 너머의 아래쪽을 주시할 뿐이었다.
봄의 시선이 머문 곳, 고개 아래의 ‘백색거탑’에서는 겨울이 채 꼬리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었다. 높다란 담을 둘러쳐 봄조차 오지 않는 동화 속 거인의 정원처럼 그곳은 을씨년스러웠고,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2006년 3월 그곳, 대검찰청 청사에서 수뇌부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댔다. 지난가을과 겨울,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이하 론스타 사건)의 본격 수사를 앞두고 ‘칼잡이’를 선별하는 중이었다.
먹구름이 드리워진 대검찰청. 중앙포토
먹구름이 드리워진 대검찰청. 중앙포토
은행은 국가 경제의 심장이자 핏줄이다. 기업과 개인을 상대로 돈을 뿌리고 거둬들이면서 경제 운용을 조율한다. 국가가 면허 발급을 통해 설립과 운용을 엄격히 관리하는 공공재다. 아무나 은행을 가질 수 없는 건 정한 이치다. 자산을 싸게 매입해 무자비한 구조조정으로 군살을 뺀 뒤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비싸게 되파는 것이 목적인 사모펀드가 애초에 가질 수 없는,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법도 그러했다. 외국 자본일 경우 제대로 된 금융사만이 10% 이상의 은행 지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던 극동의 개발도상국에는 앞뒤 잴 여력이 없었다. 기업들이 쓰러지고 거기에 돈을 대준 은행들이 빈사 상태에 놓이면서 정부는 대대적인 은행 구조조정에 나섰다. 더러는 퇴출하고, 더러는 합병한 뒤 국민의 혈세로 공적자금을 조성해 살아남은 은행들에 겨우 주삿바늘을 꽂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외자 유치가 절실했다. 하이에나 같은 사모펀드에도 은행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강원 외환은행장(왼쪽)과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은 2003년 8월 2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주식 매각 본계약서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를 손에 넣게 됐다. 중앙포토
이강원 외환은행장(왼쪽)과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은 2003년 8월 2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주식 매각 본계약서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를 손에 넣게 됐다. 중앙포토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는 2003년 8월 말 1조3834억원을 들여 외환은행 지분 51%를 매수했다. 중수부가 수사 개시 시점을 따지고 있을 때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되팔기 직전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 국민은행과 합의한 51% 지분의 재매각 대금은 5조181억원. 콜옵션을 행사해 2, 3대 주주 보유분 14%를 인수한 뒤 마저 팔면 6000억원대의 추가 차익도 얻을 수 있었다. 불과 2년 반 만에 4조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여론은 악화했고 2003년의 매각 작업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은행의 부실을 과장하고 특혜를 베풀어 무자격자인 론스타에 헐값에 매각했다는 게 제기된 의혹의 요지였다. 여기에 정치권이 가세하기 시작하면서 의혹은 경사면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급속도로 몸집을 불렸다. “근거 없는 마녀사냥”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여의도 정가와 과천 관가에서 데워진 공기는 정해진 수순인 양 서초동으로 향했다. 2005년 9월부터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론스타의 탈세 등 각종 탈법 의혹에 대한 시민단체, 국세청, 금융감독원의 고발과 수사자료 통보 조처가 줄을 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이 수사에 나섰지만 2006년 3월 7일 국회 재경위원회가 외환은행 매각 관련자들을 고발하고 감사원이 전격적으로 특감 착수 선언을 하면서 더 큰 칼이 필요해졌다. 중수부가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대검 청사에 있던 중수부 현판. 중앙포토
대검 청사에 있던 중수부 현판. 중앙포토
전국의 칼잡이들 속속 대검 집결
중수부는 특공대다. 검사장 직급인 중수부장과 차장검사 직급인 수사기획관, 그 산하에 2~3개의 과를 담당하는 과장(부장검사)은 고정돼 있었지만, 연구관으로 불리는 부부장 이하 검사들은 수시 보강 체제였다. 새로운 전투를 앞두고 몸집을 불려야 할 그때 대검 간부들은 전국의 검사 명단을 앞에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일단 최재경(전 민정수석)이 이끌던 중수1과는 가용이 불가능했다. 현대차 압수수색을 앞두고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상황이라 작은 돌멩이 하나 빼낼 수 없었다. 론스타는 자연스레 중수2과의 몫이 됐다.
당시 중간 간부 진용은 화려했다. 중수부 수사기획관 채동욱(전 검찰총장)은 서울지검 특수2부장 시절 여당 거물 정대철 의원, 국제 스포츠계의 거목 김운용 IOC 위원을 잇따라 구속하면서 각광받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중앙포토
채동욱 전 검찰총장. 중앙포토
중수2과장 오광수(전 대구지검장)는 심재륜 전 중수부장이 한보 사건 및 김현철씨 비리 의혹 사건 때 전국 검찰청에서 직접 차출한 5명의 ‘드림팀’ 중 한 명이었다.
호부견자(虎父犬子)가 있을 수 없었다. 수사 검사들은 크게 세 가지 기준에 따라 깐깐하게 선발됐다.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기준은 역시 수사 역량이었다. 첫 번째 낙점은 이두봉(전 대전고검장)이 받았다. 당시 중수부 상근 연구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홍만표(전 대검 기획조정부장) 당시 부부장과 함께 ‘진승현 게이트’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이름을 알렸다. 고종황제의 ‘헤이그 밀사’였던 이준 열사의 후손으로도 유명했다.
오광수 전 대구지검장(왼쪽)과 이두봉 전 대전고검장. 중앙포토
오광수 전 대구지검장(왼쪽)과 이두봉 전 대전고검장. 중앙포토
두 번째 기준은 ‘수사력에 영어 실력을 겸비한 인재일 것’이었다. 수사 특성상 외국인을 많이 상대해야 하고 증거물도 대부분 영어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커서다. 조상준(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이 첫손에 꼽혔다. 그는 2004년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졸업, 뉴욕주 변호사시험 합격 이력이 말해 주듯 영어를 잘했다. 2005년 귀국 후 대구지검 특수부에서 강신성일·박주천·박명환 등 전·현직 의원들의 대거 구속으로 이어졌던 대구유니버시아드 휘장 비리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해 수사 능력도 인정받았다.
당시 중수부 지휘라인에 있었던 현직 변호사 B는 “수사력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했고, 영어는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특출나게 잘해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는데 여기에 부합한 것이 조상준이었다”고 회고했다.
어학 실력은 이후 수사를 진행하면서 검사들을 추가 보강할 때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영상(현 대통령비서실 국제법무비서관)이 뽑혀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명 앵커로 유명했던 부친 이득렬 전 MBC 사장의 워싱턴지국장 재직 시절이 이영상의 학창 시절과 겹쳤다.
왼쪽부터 조상준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이영상 대통령비서실 국제법무비서관, 구본선 전 광주고검장. 중앙포토
왼쪽부터 조상준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이영상 대통령비서실 국제법무비서관, 구본선 전 광주고검장. 중앙포토
구본선(전 광주고검장)은 그때 미국 연수 중이었다는 죄로,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체포’돼 대검 청사로 ‘압송’됐다. 그는 이후 20일 동안 귀가도 하지 못한 채 수사에 매달려야 했다.
세 번째 기준의 난도가 가장 높았다. 중수부는 수사 능력과 영어 실력을 기본으로 갖춘 상태에서 ‘숫자’도 볼 줄 아는 검사가 필요했다. 론스타 수사는 ‘회계와의 전쟁’이기도 했다. 회계법인들의 외환은행 실사 자료를 해독해 은행 여신의 가치평가 및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 산정의 적정성을 따져야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회계 전문성을 갖춘 검사는 드물었다.
이윽고 이름 하나가 거명되자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임관 후 겨우 두 번째 근무지에서 일하던 이른바 ‘2학년 검사’였기 때문이다. 당시 론스타 수사팀에 있었던 변호사 C는 “2학년 검사는 중수부는 고사하고 서울지검 특수부에도 발을 디디기 힘들다. 중수부 연구관은 보통 4, 5학년인데 2학년짜리가 온다는 건 말 그대로 파격”이라고 말했다.
논란을 불식시킨 건 그의 이력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공인회계사 자격 보유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영어 실력. 게다가 짧은 이력에도 불구하고 세관 직원들을 구속하면서 수사 역량 측면에서도 이목을 끌었다.
당시 대검 중간 간부였던 변호사 D는 “군산지청 소속으로 세관 비리를 수사하는 걸 보니 ‘어쭈, 이놈 수사 좀 하네’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론스타 수사를 앞두고 생각이 나서 이력을 봤더니 회계사 자격 보유자였다. ‘이놈이다’ 싶었다.” 이복현의 첫 중앙 무대 등장이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지난해 6월 7일 취임식 때 모습. 사진 금감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지난해 6월 7일 취임식 때 모습. 사진 금감원
이복현은 론스타 수사 당시 가장 일을 많이 한 검사였다. 4인으로 시작한 첫 수사팀의 일원으로, 수사에 발을 가장 먼저 담갔으며 공소유지까지 맡으면서 가장 늦게 발을 뺐다. C는 이렇게 말했다.
“회계사 자격증이 있다 보니 회계법인이나 자문사들의 외환은행 가치평가 문제 같은 것들은 이복현이 주도적으로 수사했다. 법률가는 주로 로직(논리)을 다루고, 회계사는 숫자를 다루는데 이복현은 법률가이자 회계사였으니 로직과 숫자를 모두 꼼꼼하게 챙겨야 했다.”
막내였던 터라 겪어야 할 몸고생,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C의 말이 이어진다.
“중수부 검사들은 하나같이 검찰에서 난다 긴다 하는 기라성 같은 존재들인 데다 부장 승진을 앞두고 있던 대선배들이었다. 선배들 밑에서 궂은일까지 다 하느라 이복현이 고생을 많이 했다. 목디스크를 앓기도 했다.”
윤석열(현 대통령)과 이복현의 끈끈한 인간 관계가 처음 형성된 것도 바로 론스타 수사 때다. 이후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불리며 총애를 받던 그는 현 정권 출범과 함께 금융감독원장에 파격 발탁된다.
한동훈 독주? “이복현도 눈여겨 봐야”
현 정권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전례없이 많은 검사들이 대통령을 따라 관계로 진출했다는 점이다. 그 중 가장 도드라지는 인물은 역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한동훈이다. 그는 정권의 후광에 자신의 능력까지 더해 짧은 시간 내에 팬덤까지 형성할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서는 이복현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나온다.
특수통으로 잔뼈가 굵은 한 검사 출신 변호사의 얘기다.
한동훈이 윤석열의 최측근인 것은 맞다. 하지만 두 사람은 스타일이 다르다. 한동훈이 워낙 똑똑하고 일을 잘 하니까 윤석열이 쓰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게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반면 이복현은 윤석열과 매우 비슷한 스타일이다. 사람을 모으고 만나는 걸 좋아하며 보스 기질이 있다. 쉽게 말해 둘 다 ‘양산박’ 스타일이다. 윤석열이 가장 좋아하는 검찰 출신 인사는 아마 이복현일 거다.
대통령실에 재직 중인 한 인사의 전언도 결이 비슷하다.
“대통령의 측근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로 대통령과 친한 사람들은 일과 시간 이후에 사적으로 용산 대통령실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다. 일과 시간 이후에 가장 많이 대통령실에 불려오는 사람이 이복현이다.”
대대적 론스타 압수수색으로 본격 수사 개시
오광수, 이두봉, 조상준, 이복현으로 출발한 수사팀은 2006년 3월 30일 대대적인 론스타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수사 개시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후 중수1과 등의 검사들이 순차적으로 합류하면서 수사 막판에는 검사만 스무 명에 이를 정도로 덩치가 커진다. 윤석열과 한동훈도 중수1과에서 현대차 수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 넘어와 이복현과 대면하게 된다. 현 ‘검사 권력’ 실세들의 조우가 그때 이뤄진다.
2007년3월 중수부장의 이임을 앞두고 당시 중수부 검사들이 대검 청사 앞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채동욱 당시 수사기획관, 오광수 중수2과장, 윤석열, 이복현, 이두봉, 이동열, 조상준. [중앙포토]
2007년3월 중수부장의 이임을 앞두고 당시 중수부 검사들이 대검 청사 앞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채동욱 당시 수사기획관, 오광수 중수2과장, 윤석열, 이복현, 이두봉, 이동열, 조상준. [중앙포토]
동탁과 맞서기 위해 낙양에 모인 ‘18로 제후’처럼 경향 각지의 검사들이 중수부에 집결했다. 하지만 이들의 상대는 하나가 아니었다. 세계 굴지의 사모펀드 론스타와 그 뒷배가 됐던 거대 로펌, 회계법인, 글로벌 투자은행 등 쉽지 않은 상대들이 즐비했다. 무엇보다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허가해 준 그들, 예산·세금·금융을 틀어쥔 채 나라 살림을 좌지우지하던 최고 엘리트 경제관료 집단 ‘모피아’와 일합을 겨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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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딱 보니 되는 사건이야” 33세 검사 한동훈과 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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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무슨 동창회입니까” 재판장도 웃게 한 尹의 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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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진석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kailas@joongang.co.kr
먼 길 돌아 다시 서초동 글을 쓰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