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정유진
이태윤
장윤서
박진석
이것이 팩트다
법 인(in) 여의도, 여의도 법인(人)③ - 홀로 살아남은 ‘친윤 검사’
참담했다. 흔히 말하는 재경(在京)지검, 그중에서도 선임인 서울동부지검의 부장검사였던 그다. 다음 보직은 법무부, 대검, 중앙지검이거나 서울과 가까운 곳의 대형 지청장이라야 순리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경기, 충청, 강원을 뛰어넘어 조령 너머에 있는 경북 안동으로 그를 보냈다. 2019년 7월의 그 인사에서 정권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번 정권에서는 절대 당신을 쓰지 않겠다.’
청와대를 두 번이나 압수수색하고, 장관과 비서관을 기소하면서 역린(逆鱗)을 건드렸을 때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안동지청장 자리에 앉느냐, 마느냐. 그는 사흘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린 뒤 법무부에 사직 통보를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청사를 나가던 순간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나야. 윤석열이야.
막 검찰총장이 됐을 무렵의 윤 대통령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윤 총장의 전화를 받은 이는 주진우 당시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현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인·이하 경칭 생략)이었다.
이번 총선에 나섰던 숱한 친윤 검사 출신 인사 중 거의 유일하게 당선된 주진우 당선인. 뉴스1
이번 총선에 나섰던 숱한 친윤 검사 출신 인사 중 거의 유일하게 당선된 주진우 당선인. 뉴스1
문재인 정권과 각을 세운 검사가 윤 대통령이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만은 아니었다. 전장(戰場)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인 것만도 아니었다.
전쟁은 외곽에서 시작됐다. 서울의 동남부 끝자락, 성남과 담을 맞댄 서울동부지검이 첫 싸움터였다.
재경지검, 즉 서울 동·남·북·서부지검에는 직재상 특수부(현 반부패부)나 공안부(현 공공수사부)가 없다. 형사부만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 숫자가 가장 큰 부서가 특별수사를 담당해 왔다. 동부지검에서는 형사6부가 특수부였고, 형사6부장 주진우가 특수부장이었다.
그는 검사 가문 출신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연수원 7기)인 주대경 전 부산지검 공안부장이 부친이다.
1975년 3월27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제17회 사법시험 합격자 60명의 명단.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 동그라미), 안대희 전 대법관,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 진영 전 행안부 장관, 안상수 전 의원, 정상명 전 검찰총장 등과 함께
주진우 당선인의 부친인 주대경 전 부산지검 공안부장(오른쪽 동그라미)의 이름이 게재돼 있다.
주진우는 부산 대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제41회 사법시험(연수원 31기)에 합격해 2002년 검사로 임관했다. 2006년 중앙지검에 입성한 그는 이후 법무부, 대검 중수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거치며 전형적인 엘리트 검사의 행보를 밟아 나갔다.
중앙지검에서 인연을 맺은 이가 후일 청와대 민정수석이 되는 우병우 금융조세조사2부장이다. ‘일벌레’ 부장을 모신 탓에 그도 과로가 일상인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때 들이닥친 망막정맥폐쇄로 지금도 한쪽 눈이 매우 나쁘다.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시절의 우병우. 주진우는 그와 서울중앙지검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두 차례 함께 일했다. 중앙포토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시절의 우병우. 주진우는 그와 서울중앙지검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두 차례 함께 일했다. 중앙포토
수사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2011년 대검 중수부 저축은행 수사팀에 발탁됐다. 중수2과장(부장검사)이던 윤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게 그때였다.
수사 개시 직후의 어느 날 그가 중수2과장실 문을 두드렸다. 법원에 피의자 10여 명의 구속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성한 구속영장 부속서류를 들고서였다.
예상 체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저 담당 과장에게 형식적으로 보고하고는 도장이나 받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잠깐 앉아봐.”
윤석열 중수2과장은 주진우가 작성해온 서류를 들여다보더니 그 자리에서 고치기 시작했다. 그의 입과 손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서류를 수정하는 이유를 ‘수다’ 수준으로 세세히 설명해 가면서 연신 키보드를 두들겼다.
특수통 검사 출신 변호사 A의 전언이다.
외모만 보면 윤 대통령이 컴퓨터를 잘 못 다룰 것 같지? 손도 솥뚜껑만 하고 그래서? 아니야. 단축키를 수시로 써가면서 엄청 빠르고 정확하게 서류를 작성해. 자백 받아내는 것만 잘하는 게 아니라 ‘페이퍼워크’에도 강해. 검사로 유명해진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100페이지가 넘는 서류가 거의 새로 작성되다시피 했다. 주진우는 꼬박 일곱 시간을 거기 머물며 검사 선배로부터 살아 있는 교육을 받았다.
어? 밥 먹을 시간이 다 됐네. 김치찌개 먹을래?
윤 중수2과장은 사무실 한구석에서 김치와 버너를 꺼내더니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두 사람은 즉석밥을 데워 함께 먹었다. 주진우는 훗날 주변인들에게 “그때가 정말 좋았다. 너무도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아 있다”고 술회하곤 했다.
2011년 11월 대검 중수부의 저축은행 수사 결과 발표장에서 윤석열 중수과장(왼쪽 둘째)이 최재경 중수부장(왼쪽)의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2011년 11월 대검 중수부의 저축은행 수사 결과 발표장에서 윤석열 중수과장(왼쪽 둘째)이 최재경 중수부장(왼쪽)의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주진우는 2014년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장(행정관)으로 낙점받아 청와대에 입성했다. 옛 상관 우병우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이 된 지 불과 3개월 뒤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2년2개월간 ‘박근혜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다. 시련이 시작된 건 정권이 바뀐 뒤였다.
고발인 조사 없이는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낼 수 없다는 게 대검 반부패부 얘긴데, 그 말이 맞아?
2018년 말. 문무일 검찰총장이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에게 은밀하게 문의했다. 그 자신이 내로라하는 ‘특수통’이었던 그의 문의에는 반부패부(옛 중수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친정권 검사’의 대표 격인 이성윤 국회의원 당선인(전 서울고검장)이 대검 반부패부장(검사장)이던 시절이다.
호남 출신의 문무일 검찰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정권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중앙포토
호남 출신의 문무일 검찰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정권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중앙포토
문 총장이 언급한 이슈는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전 서울 강서구청장)의 폭로로 촉발된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의혹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특별감찰반에 파견돼 일하던 김 전 수사관은 2018년 12월 자신의 비리 의혹으로 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35건에 달하는 특별감찰반 비위 사실을 폭로했다.
거기에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조국 당시 민정수석(현 조국혁신당 대표)의 감찰 무마 의혹, 그리고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 핵폭탄급 이슈가 대거 포함돼 있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폭로 서류들을 들춰보고 있다. 중앙포토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폭로 서류들을 들춰보고 있다. 중앙포토
고발장에 고발 사유가 다 들어 있기 때문에 고발인 조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거 안 했다고 압수수색 영장이 안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사건 보내시고 ‘오더’만 내려주시면 영장 받아내겠습니다.
주진우의 답을 들은 문 총장은 그 폭탄을 중앙지검이 아니라 서울동부지검에 넘겼다. 수사는 형사6부가 맡았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해 이뤄진 첫 번째 수사였다.
수사는 쉽지 않았다. 검찰 내·외부에 모두 수사 방해 세력이 존재했다. 전국의 특별수사를 총괄 관리하는 대검 반부패부에서는 수사에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검사 B가 말했다.
원래 주진우의 ‘원픽’은 유재수 사건이었어. 입증이 쉬울 거라고 봤거든. 근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검에서 그걸 후순위로 돌리라고 했어. 그래서 당초 2순위로 봤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먼저 수사하게 된 거야.
주진우가 사퇴한 뒤 서울동부지검은 당초 주진우가 1순위 수사대상으로 꼽았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결국 그를 기소했다. 중앙포토
주진우가 사퇴한 뒤 서울동부지검은 당초 주진우가 1순위 수사대상으로 꼽았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결국 그를 기소했다. 중앙포토
그의 말이 이어진다.
당시 대검 반부패부와 수사팀 갈등이 컸어. 수사팀이 뭘 하겠다고 하면 반부패부가 반대하면서 ‘다시 법리 검토를 하라’고 시키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지. 검사 증원 요청도 전혀 들어주지 않았어. 그래서 수사팀이 옆 부서에서 사람을 꿔가면서 수사했어. 그때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이 외압을 많이 막아줘서 겨우 수사를 이어 나갈 수 있었지.
외압을 막아주면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의 성공을 이끌었던 한찬식 전 서울동부지검장. 정권의 보복으로 고검장 승진에 실패하자 옷을 벗었다. 뉴스1
외압을 막아주면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의 성공을 이끌었던 한찬식 전 서울동부지검장. 정권의 보복으로 고검장 승진에 실패하자 옷을 벗었다. 뉴스1
각종 방해에도 불구하고 수사팀은 정공법으로 뚜벅뚜벅 전진했다. 그 결과 환경부가 실제로 과거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 기관 임원들을 강제로 물갈이하려 했다는 정황과 증거들을 속속 확보했다. 환경부와 관련 부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 역시 압수수색을 피하지 못했다.
2018년 말 서울동부지검 수사관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내 청와대 특별감찰반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말 서울동부지검 수사관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내 청와대 특별감찰반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뉴스1
수사의 분수령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였다. 수사팀은 영장이 발부되면 그걸 발판 삼아 청와대를 정면으로 겨냥할 심산이었다. 이미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연루 사실이 드러난 상황이었지만 타깃은 그 윗선이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검사 C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주진우는 김 장관이 구속되면 곧장 조현옥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전 주독일대사)을 조사할 계획이었어. 애초에 비서관이 인사수석한테 보고도 안 하고 그런 일을 벌였다는 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수석까지 가면 대통령 턱밑까지 가는 거잖아. 정권이 힘이 있는 2년 차 때라 모두들 필사적으로 조 수석을 보호하려 했어. 그걸 타개할 돌파구는 김 장관 구속뿐이었는데 영장이 기각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거야. 그런데 조 수석이 결국 ‘산업부 블랙리스트’ 건으로 지난해 기소됐잖아? 사필귀정인 거지.
청와대 인사수석 시절의 조현옥.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인사수석 시절의 조현옥.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시 주진우와 그의 수사팀이 불구속 기소한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결국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수사가 정당했음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나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이들에게 돌아온 건 풍비박산이었다. 주진우의 방패막이가 돼줬던 서울동부지검의 한찬식 지검장과 권순철 차장은 2019년 7월 인사에서 각각 고검장과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자 옷을 벗었다. 수사 검사들도 줄줄이 한직으로 좌천됐다. 주진우 역시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다.
B가 전해 준 주진우의 ‘사직의 변’이다.
인사가 난 뒤에 사흘을 고민했어요. 검사를 그만두는 게 너무 아쉬워서. 나는 검사 아닌 다른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에요.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참고 가려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재인 정권이 3년이나 더 남았더라고요. 가장 일을 많이 할 연차였고, 검사로서의 능력도 절정에 올랐을 때인데 정권이 ‘너한테는 앞으로 역할을 안 주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던졌으니…. 이 정권에서는 미래가 없겠다 싶어서 사직한 거예요.
사표를 던지기 직전 마음에 걸렸던 이가 갓 검찰총장이 된 윤 대통령이었다. 전화를 했다가는 난리가 날 것 같아 검찰 내부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윤 총장님, 검찰에서 더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부득이하게 사표를 내야 하는 상황이 온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나가서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답을 기다렸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날 온종일 행사가 있어 윤석열 당시 총장이 메신저를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윤 총장의 전화가 온 건 주진우가 이미 검찰 내부 게시판에 사퇴의 변을 올린 뒤였다.
진우야! 네가 왜 그만둬? 당장 사표 회수해!
정말 죄송합니다. 이미 내부 게시판에 그만둔다고 글까지 올렸습니다.
윤 총장은 목이 멘 듯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그의 음성이 들려온 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어쩔 수 없구나. 그래, 네가 선택한 길이니까 존중한다. 나가서도 잘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주진우는 변호사로 변신한 뒤에도 잘나갔다. 사건이 몰려들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돈벌이와 멀어지면서 윤 대통령, 한동훈 위원장과 다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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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유진
중앙일보 기자
jung.yoojin@joongang.co.kr
진실을 바라보는 눈.
이태윤
관심
중앙일보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기획취재국 이태윤 기자입니다. 많이 듣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장윤서
관심
중앙일보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박진석
관심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kailas@joongang.co.kr
먼 길 돌아 다시 서초동 글을 쓰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