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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 김상기 기자] 님의 글입니다.
"당신은 날 죽일 수 없다" 대한항공 박창진 인터뷰
김상기 기자 입력 2019.03.02. 00:06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에게 ‘땅콩 회항’은 악몽 같은 일이다. 햇수로 5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 일은 꿈이 아니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박 지부장은 사건 직후 1년 가까이 매일 수십 번씩 밀려드는 극단적인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으나 공황장애와 신경쇠약증, 불면증이 남았다. 정신이 무너지자 몸이 망가졌다. 마음속 상처가 건장했던 그를 갉아먹었다. 지난해엔 목덜미에 커다란 종양이 생겨 수술로 떼어냈다. 후유증으로 목이 굽고 얼굴이 비뚤어졌다.
그는 재벌 갑질의 대표 명사가 된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다. 진실한 사과와 정당한 보상을 받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상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향해 조직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는 여전히 사측의 감시와 일부 사내 조직원들의 차가운 시선에 또 다른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했다.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박 지부장을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릴 때마다 인생 스위치를 끄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용기를 내 끝까지 생존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박 지부장은 “두렵고 떨리지만 더는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개인 박창진에 머물지 않겠다”면서 “갑질하는 재벌과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노동운동가인 박창진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정신적 트라우마, 평생 장애로
박 지부장은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심신에 큰 타격을 받았다. 정신적인 피해가 심했다. 지금도 신경쇠약과 불면증, 공황장애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 나돈 ‘조현아 영상’을 봤거든요. 그리곤 3~4일간 악몽을 꿨어요. 사실 땅콩 회항 사건 직후 1년 가까이 빈번하게 조현아가 직접 등장하거나 고릴라나 킹콩 같은 괴물이 절 공격하는 악몽을 꿨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박 지부장에게 평생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고 한다. 일상생활조차 쉽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예전으로 다신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승객들이 자리에 앉아 자신을 쳐다보면 두려움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다.
“기내에 승객들이 빼곡히 앉은 것을 보면 숨이 막혀요. 누군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 절 공격할 것 같거든요. 그럴 땐 10초 정도 심호흡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연기를 합니다. 어떤 분은 제게 ‘멀쩡하네요’라고 하지만 속은 타들어 가죠.”
박 지부장은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조현아 당시 부사장에게 끔찍한 모욕을 당했다. 그는 자신이 당한 상황이 지금 인터넷에 나도는 ‘조현아 동영상’ 보다 1만 배는 더 폭력적일 것이라고 했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제가 20여 분간 당했던 폭언과 욕설은 끔찍했어요. 조 부사장의 폭언으로 내 자아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죠. 그때 그 폭언이 제 정신과 삶을 파괴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목덜미에 15㎝짜리 혹이 생겼다. 수술로 혹을 제거했는데 목 측만증이 왔다. 목이 앞으로 15도 굽었다. 수술 이후 얼굴 대칭이 맞지 않는다. 정면에서 얼굴을 자세히 보면 입도 코도 살짝 비뚤어졌다.
사내 2차 가해 심각, 극단적 상황 내몰려
처음엔 세상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피해자인 자신에게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박 지부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로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는데도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전 피해자입니다. 근데 제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자 ‘박창진이 욕심을 부린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생겨났어요. 처음엔 제 권리 회복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없는 줄로만 알았죠.”
설상가상으로 회사 내부에서 2차 가해가 심해졌다. 엉뚱한 일을 트집 잡아 박 지부장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는 ‘짜파구리’ 사건을 예로 들었다.
“조현아씨가 회사에 복귀한 뒤 원가 절감한다며 승무원 식사를 60%로 줄인 적이 있어요. 승무원이 20명이면 12명 식사만 싣는 거죠. 전수조사해보니 식사가 남는다며 남은 도시락으로 해결하라는 겁니다. 탁상행정이지만 따라야 했죠. 그래도 도시락 수가 적으니 제가 사식을 갖고 비행기를 탔어요. 그때 짜장면과 우동을 섞은 짜파구리가 유행했는데 이코노미석 승무원들에게 짜파구리를 끓여 줬죠. 근데 이 일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박창진이 기내식을 안 먹고 사식을 들여와 승무원들에게 끓이라고 지시하는 등 갑질을 했다’고 말이죠. 이런 식의 왜곡이 횡행했습니다.”
박 지부장은 사측이 자신과 한 팀이었던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고도 했다. 불려간 사람들은 박 지부장이 화장실에 몇 번 가고 짜파구리를 끓여 먹었다는 식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적어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문제 될 일이 아닌데 규정을 엄격히 들이대며 절 공격하는 일들이 많아졌어요. 더 큰 문제는 이런 사측의 대응에 휩쓸려 내부에서도 자발적으로 절 비난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점이었어요.”
이런 일이 잦아지자 그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미국행 비행기를 15시간 이상 타도 완벽한 로봇처럼 한 치의 오차나 흐트러짐도 보여선 안 된다는 긴장감이 그를 옥죈다.
“저도 인간이니 피곤하면 졸 수 있어요. 그런데 트집 잡히지 않으려면 남들이 화장실 한 번 점검할 때 전 두세 번 점검해야 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그를 붙잡은 한마디
땅콩 회항 사건 직후 극단적인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자신은 떳떳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사내 2차 가해가 극심해지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죽으려고 14일 동안 끼니를 거른 적도 있다고 했다. 피해자인 자신이 왜 ‘나쁜 사람’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은 조현아 전 부사장이 지난해 3월 칼호텔네트워크 등기이사(사장)로 복귀하면서 찾아왔다. 마침 박 지부장의 목덜미에는 커다란 혹이 자랐다.
“그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을 즈음 조현아씨가 복귀했거든요. 전 피해자인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복귀하는 상황이라니. 오히려 회사에선 조현아씨를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때 인생의 스위치를 끄고 싶었다고 한다. 햇살이 잠시 보였다가도 언제나 거대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박 지부장의 말을 들어주는 국가기관도 없었다.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과정조차 쉽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에 서류를 내면 최종적으로 대한항공이 사인을 해줘야 산업재해 혜택을 받는 구조였어요. 근로복지공단은 기업이 사인을 해주지 않으면 자신들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제가 변호사를 사 정식 대응하겠다고 한 뒤에야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었죠. 신청한 지 8개월 만이었습니다.”
절망의 순간, 가족의 위로와 응원이 그를 붙잡았다.
“제 사건이 터지자 제 누님께서 말기 암 수술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절 찾아와 위로하고 응원해주셨어요. 누님이 말기 암 수술을 미루셨다는 건 나중에 알았죠. 가족을 위해서라도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상도 도움이 됐다. 세상이 무서워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너의 잘못은 없다’는 말이 들렸다. 때마침 대한항공 조씨 일가에 맞서던 사람들이 박 지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독했던 그에게 투쟁 연대를 제안해 왔다.
“저랑 비슷한 처지에 있던 분들(대한항공직원연대)이 제게 함께 하자며 도움을 요청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여기고 더 용기를 냈습니다. 지금은 직원연대와 함께 조씨 일가 퇴출운동을 하고 있죠. 전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책 출간도… “선한 영향력 주고 싶다”
박 지부장은 최근 ‘플라이 백-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자신이 본 피해를 호소하려고 책을 쓴 것이 아니라고 했다. 대신 끝까지 투쟁해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생존을 선택하고 투쟁하기로 했으니 우리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제 미래에 대한 계획서 같은 책입니다. 전 노동자지만 평생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우매했죠. 이제야 자의식을 갖게 된 저 자신의 사례를 통해 현실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었다. 더 용기를 내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고 했다.
“‘조현민 물컵 갑질’을 폭로한 내부 직원이 어떤 인터뷰에서 “너무 두렵다. 그래도 박창진씨의 용기를 보고 힘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제 머릿속에서 종이 '땡' 하고 울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 내 작은 용기가 여진처럼 다른 사람들을 움직였구나 하고 말이죠.“
“이 분 덕분이야” 그를 울컥케 한 한마디
그는 끝으로 시민들의 응원과 지지를 호소했다. 길거리에서 인터넷에서 갑과 싸움에서 지치지 말고 힘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큰 위로를 얻는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전날 비행기 안에서 받았다는 쪽지를 품에서 꺼내면서 환하게 웃었다. 쪽지엔 ‘박창진 사무장님 그동안 계속 응원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쭉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어제 베트남 다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는데요. 한 여성 승객이 제게 쪽지를 주셨어요. 비행기 티켓 뒷장에 글을 쓰셨더군요. 볼펜을 꺼내 쓰고 직접 제게 다가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 내 주셔서 감사했어요. 엄마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신다고 하더군요. 고난은 있지만 그래도 제가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뻤어요.”
요즘엔 박 지부장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시민들이 늘었다.
“사실 두려워요. 그래도 용기 내겠습니다. 미약하겠지만 제 용기를 보고 힘을 얻는 분들이 우리 사회에 보다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얼마 전엔 길거리에서 감동적인 일을 경험했다.
처음 보는 여성이 길을 가다 멈추고 아들에게 인사를 시키더란다. 여성은 아들에게 ‘이 분 같은 사람들 덕분에 네 미래가 바뀔 수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하는 박 지부장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사진·영상=김평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