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을 다큐로?…‘문재인입니다’가 빚은 ‘문화의 정치화’
입력 2023-05-01 11:49
업데이트 2023-05-01 11:56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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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의 한 장면. 엠프로젝트 제공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10일 개봉)는 잡초를 좋아하는 자연인 문재인의 일상과 문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입’을 빌린 대통령 문재인의 면모를 병치시킨다.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은 없지만, 주요 인사들의 인품 찬양과 재임 시절 성과 강조로 문 전 대통령은 자연스레 ‘인간미 갖춘 진정한 대통령’으로 격상된다. 강력한 팬덤을 가진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관점의 다큐멘터리는 이례적이고, 제작사가 홍보 자금 조달을 위해 선택한 크라우드 펀딩 방식은 개봉 전 배급 단계에서부터 지지층 결집을 부추겼다. 다큐멘터리가 특정 정치인을 미화하고, 세력화하는 ‘문화의 정치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문재인입니다’는 여러 면에서 일반적이지 않다. 우선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관점의 다큐멘터리는 이례적이다. 다큐멘터리 장르의 성격상 보통 정치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사후에 공과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모두 사후에 만들어졌다. 감독의 전작인 ‘노무현입니다’ 역시 노 전 대통령 사후 8년이 지나 개봉했다.
물론 살아있는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적인 관점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 당시 행적을 다룬 ‘대통령의 7시간‘(2019)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한 ’MB의 추억‘(2012) 등이 대표적. 외국으로 넓히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다수 있지만, 당시 정부 인사들이 총출동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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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의 한 장면. 엠프로젝트 제공
‘문재인입니다’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상조·김수현 전 정책실장, 윤건영·이진석 전 국정상황실장, 박수현 전 국민소통수석, 김의겸·강민석 전 대변인,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신동호 전 연설비서관, 조한기 전 의전비서관 등 문재인 정부 인사 다수가 등장한다.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까지 30명이 넘는 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이 영화에 참여했다. 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의겸·윤건영 등 인터뷰에 참여한 현역 의원들은 영화에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직책으로 소개됐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으로 기소된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감사한 분들’로 영화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은 여전히 탄탄한 팬덤을 갖춰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크라우드 펀딩 만으로 15억 가까이 모은 것이 단적인 예다. 영화는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4월 10일 모금을 시작해 19일 마감할 때까지 3만4036명으로부터 총 14억8782만9898원을 모아 목표액 3000만 원을 4959% 초과 달성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대중으로부터 후원금을 모으고, 자연스럽게 지지층 결집 효과를 거둔 방식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과 ‘노무현입니다’ 등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된 방식이다. ‘그대가 조국’은 5만1794명의 후원자로부터 5000만 원 목표액을 5221% 초과 달성한 26억1091만1000원을 모았다. ‘노무현입니다’도 모금 개시 26분 만에 목표 투자금 2억 원을 달성했고, 총 4억8900만 원을 모았다. 이들 영화는 강력한 팬덤 덕에 흥행 면에도 선전했다. ‘그대가 조국’은 33만 명이 봤고, ‘노무현입니다’는 185만 명이나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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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의 한 장면. 엠프로젝트 제공
자신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출연한 것 자체가 “잊히고 싶다”는 그의 발언과 모순된다. 영화에서 문 전 대통령은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 없이 “나는 원래 일하는 것보다 놀기를 좋아한다” 등으로 말하지만, 영화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특히 영화는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 문재인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계승자이자 촛불정신의 수호자로 역사 위에 올려세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문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결심을 연결짓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주류를 바꾸고 싶었다. 정치의 주류는 국민이고, 권력의 중심은 시민”이라는 문 전 대통령의 연설과 2017년 광화문 촛불집회 광경을 연결한 것 역시 정치적 의도가 배어있다. 영화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은 지난달 30일 특별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노무현입니다’의 연작으로 문 대통령을 어떤 역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노무현입니다’(2017)는 이 감독의 전작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is is the President’로 ‘이것이 대통령이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모두가 문 전 대통령을 ‘대통령님’이라고 부른 것에 착안한 제목일 수 있지만, 정치적 함의를 드러낸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감독은 “다큐멘터리가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제 선호도가, 저의 시선이 묻어있는 영화를 만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