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감정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 가지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일상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하고 있으며 사랑을 찾는 모습이다. 바로 이러한 나의 모습이 자아만을 추구하고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사랑을 거부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그리고 팬쇼를 증오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오는 <잠겨 있는 방>의 절정을 장식해 팬쇼 어머니와의 섹스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나는 팬쇼를 죽여버리겠다고, 그리고 어머니와의 섹스를 통해 그에게 천천히 복수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팬쇼에 대한 그러한 감정은 바로 자신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의 갈등와 증오였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내가 팬쇼에 대한 전기를 쓰고 그럼으로써 그에게 다가가면서부터 증폭된 것인데, 그럴수록 내면의 세계 (-팬쇼가 어둠이라고 표현한)가 강해져 일상적인 나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팬쇼의 자료를 수집하러 파리에 갔을 때는 완전히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겨우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팬쇼가 그를 불러내게 되는데, 나는 팬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닫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게 된다. 이 닫힌 문은, 너무나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내가 절대로 팬쇼에게 완전히 다가갈 수는 없는, 즉 자신의 완전한 내면으로는 절대 다가갈 수 없음을, 두 세계가 완전히 타협할 수는 없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팬쇼가 자살하여 죽는 설정은, 내면의 자아의 모습으로만은 결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을 나타낸다.
(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까뮈를 두고 한 말이다. 까뮈에서는 인간이 전적으로 내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나는 철저히 실존적이고, 그래서 갈등은 ‘나와 세계’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여기서는 내 안에 두 측면이 갈등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 200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