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S 지식정보센터

리뷰

조회 수 20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잊혀져 있던 팬쇼가 기억에서 되살아나자 나는 자신의 심한 동요를 느꼈고, 또 한편으로 그를 증오했다. 멀리 있는 사람, 별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증오를 느끼지 않는다. 증오는 가까이 있고 자주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생기는 감정이다. 내가 그 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팬쇼를 증오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내게 있어서는 영향력 있는 존재이고 내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어렸을 적 부터 팬쇼는 그에게 잊혀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내면의 깊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 독립된 세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팬쇼의 모습은 바로 내가 진정으로 찾고자 했던 모습이고, 팬쇼의 세계는 바로 나의 내면이 진정으로 갈구하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의 모습은 팬쇼의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과는 달리 끊임없이 외부와 동화되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잊혀졌던 팬쇼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자 잊혀졌던 나의 내면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하여 나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갔다.
증오의 감정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 가지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일상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하고 있으며 사랑을 찾는 모습이다. 바로 이러한 나의 모습이 자아만을 추구하고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사랑을 거부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그리고 팬쇼를 증오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오는 <잠겨 있는 방>의 절정을 장식해 팬쇼 어머니와의 섹스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나는 팬쇼를 죽여버리겠다고, 그리고 어머니와의 섹스를 통해 그에게 천천히 복수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팬쇼에 대한 그러한 감정은 바로 자신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의 갈등와 증오였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내가 팬쇼에 대한 전기를 쓰고 그럼으로써 그에게 다가가면서부터 증폭된 것인데, 그럴수록 내면의 세계 (-팬쇼가 어둠이라고 표현한)가 강해져 일상적인 나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팬쇼의 자료를 수집하러 파리에 갔을 때는 완전히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겨우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팬쇼가 그를 불러내게 되는데, 나는 팬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닫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게 된다. 이 닫힌 문은, 너무나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내가 절대로 팬쇼에게 완전히 다가갈 수는 없는, 즉 자신의 완전한 내면으로는 절대 다가갈 수 없음을, 두 세계가 완전히 타협할 수는 없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팬쇼가 자살하여 죽는 설정은, 내면의 자아의 모습으로만은 결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이 작품은 ‘내면의 자아 찾기’라는 다소 흔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몰아가지 않고*, 거기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현실을 새로운 차원에서 심도있게 보여줌으로써, 진실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어, 새장을 열어보였다고 할 수 있다.
(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까뮈를 두고 한 말이다. 까뮈에서는 인간이 전적으로 내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나는 철저히 실존적이고, 그래서 갈등은 ‘나와 세계’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여기서는 내 안에 두 측면이 갈등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 2004년 2월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6 [보르헤스 - 알렙] 엠마 순스 이야기에 대해 ...[2023-05-31] viemysogno 2023.05.31
25 - 확인 - [IIS Opinion & 검증] ...- (세계일보 박영준) [단독] 폼페이오 “트럼프도 김정은도 판문점 회동에 文동행 원치 않았다” [특파원+] ...[2023-01-24] viemysogno 2023.01.24
24 [IIS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함] [Music] Damien Rice - Eskimo ...(from Youtube Official) [2022-09-10] viemysogno 2022.09.10
23 = 추천 = (Vogue) 부쉐론의 여신, 고윤정 ...[2022.08.26] file viemysogno 2022.08.28
22 [IIS 감사와 존경을 표함] 가수 Carla Bruni ...[2022-08-25] viemysogno 2022.08.25
21 [Comment] (유튜브 Glen Hansard) Glen Hansard, Marketa Irglova - Falling Slowly (Official Video) ...[2022-08-05] viemysogno 2022.08.05
20 (음악) 태양 - 눈, 코, 입 [2022-07-28] viemysogno 2022.07.28
19 (추가 & 수정) [IIS 리뷰] 윤 대통령 취임식 - 리뷰 ... [2022-05-10] viemysogno 2022.05.10
18 Andrea Bocelli - Euro 2020 Opening Ceremony (at the Stadio Olimpico in Rome) ...[2022-01-10] viemysogno 2022.01.10
17 IIS Originals)) 조영남의 화투 그림 팝아트 작품에 대해 ...... [2022-01-10] viemysogno 2022.01.10
16 러시아 바리톤 가수 Dmitri Hvorostovsky viemysogno 2022.01.09
15 J.M. 쿳시 - 야만인을 기다리며 admin 2016.08.07
14 詩) 씨양씨양, 도요가 운다 - 박정대 admin 2016.08.07
» 폴 오스터 (Paul Auster) - 뉴욕 3부작 admin 2016.08.07
12 유하 :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admin 2016.08.07
11 셰익스피어 (Shakespeare) - 오셀로(Othello) admin 2016.08.07
10 詩) 빌리 콜린즈 - 첫 꿈 [임혜신 엮음: 오늘의 미국 현대시] admin 2016.08.06
9 감사의 말을 전함) 유하 시인 togyu11 2016.03.05
8 (영화) 밀양에 대해 togyu11 2015.12.31
7 로베스피에르 - "모든 권리 중의 으뜸가는 권리는 ...... " admin 2016.10.1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