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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군사 기술 자립 속도 내라"... 미국 제재망 무력화 의도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peoplepeople@hankookilbo.com
별 스토리 • 어제 오후 9:00
미국의 공급망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기술 자립을 강조해 왔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에는 "군사 기술에서의 자립자강 속도를 키우라"고 군부 등을 향해 다그치고 나섰다.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 범위가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산업뿐 아니라, 군사 기술 분야로까지 확대되는 데 대한 대비를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진핑 "군사 기술 자립 속도 내라"... 미국 제재망 무력화 의도
© 제공: 한국일보
시진핑(앞줄 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제14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계기로 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및 인민무장경찰대표단 전체회의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징=AP 뉴시스
국방색 인민복 입고 "군사 기술 자립" 강조
9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 부대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단 회의에서 "군부는 과학 기술을 활용해 혁신해야 하며 과학 자립을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짙은 초록색의 '국방색 인민복'을 입고 회의에 참석한 시 주석은 "국방 과학기술 공업이 더욱 '강군승전(强軍勝戰)'의 방향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며 "산업망과 공급망의 강인함을 증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안보를 위한 대규모 비축 시스템 구축 가속화를 주문한 뒤엔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야 한다"면서 군사 기술 자립을 거듭 강조했다.
시 주석의 발언엔 최근 미국의 제재망이 중국의 군사 역량을 제한하는 쪽으로 확대되는 데 대한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 미 재무부와 상무부는 이달 초 중국의 특정 산업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는 제재 조치를 담은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쟁국(중국)의 군사 역량을 진전시킬 수 있는 분야에 규제 초점을 맞춘 보고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 정부가 군사적 결정 속도와 정확성을 향상시킬 수 없도록 미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에 자금과 전문 지식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첨단 군사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걸 막겠다는 목적이라는 뜻이다.
결국 시 주석의 의중은 '미국 기술이 필요 없는 방위산업 시스템을 구축해 미국 제재망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시 주석은 "전략적 위험에 대응하고, 전략적 이익을 수호하며, 전략 목적을 실현하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실력을 체계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통상 중국에서 '전략적'이라는 표현은 동·남중국해와 대만해협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적 팽창을 암시할 때 쓰인다. 중국의 국방력 강화가 본토 방위 능력을 넘어, 미국과의 충돌에 대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진핑, 3연임 만장일치 여부 주목
중국은 이번 전인대에서 "과학기술 사업에 대한 당의 집중통일영도 강화를 위한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신설"도 예고했다. 첨단기술 정책 주도권을 기존 국무원 산하 과학기술부에서 공산당으로 옮겨 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 더욱더 전략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전인대는 10일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국가부주석,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선출한다. 지난해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이미 시 주석의 3연임이 사실상 확정된 만큼, 관전 포인트는 그에 대한 '만장일치 선출' 여부다. 2013년 전인대에서 시 주석은 찬성 2,952표, 반대 1표, 기권 3표를 얻어 국가주석 자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