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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축복이라던 전세가 재앙이 된 이유?...전세 포플리즘의 비극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별 스토리 • 5시간 전

 

 

 

 

 

 

 

“전세 이제 수명을 다한 것 아닌가?”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최근 전세 사기극과 관련해서 한 말이다. 원 장관은 “과연 보증금이란 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투명한 임대·매매가격 공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올 하반기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한때 한국에서 살아본 외국인들이 “너무 좋다”고 찬사를 연발할 정도로 세입자에게 유리한 임대제도라던 전세가 재앙이 됐다. 사기극으로 보증금을 건지기 어려워진 세입자의 비극적 자살이 이어지면서 국토부 장관 입에서 전세 폐지론까지 등장했다.

 

 

 

◇KDI, 1993년 전세 제도 폐지 주장

 

학계와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라는 전세의 치명적 단점을 지적해왔다. KDI(한국개발연구원)가 1993년 ‘전세의 경제적 효과와 개선방안’이라는 논문을 통해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전세를 통한 강제저축 효과가 크지 않다’며 전세 폐지론까지 주장했다. KDI는 전세를 폐지할 경우, 저축의 증대와 주거의 조기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국토연구원 2000년 ‘전세시장 여건변화와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집값이 떨어지면 보증금 상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책연구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자들이 전세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한다. 볼리비아 등 극히 일부 국가 외에는 전세가 아닌 월세 임대차 계약이 일반적이다. 학자들은 전세를 주택금융이 발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만들어진 제도로, 전세를 일종의 사금융으로 보고 있다. 사금융이라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완전한 제도라는 의미이다. 금융이 발전하면 한국에서도 사금융의 일종인 전세가 소멸될 것으로 예측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원회가 최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인정범위 확대, 선구제 후회수 등 보증금 회수 방안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원회가 최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인정범위 확대, 선구제 후회수 등 보증금 회수 방안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 제공: 조선일보

 

 

◇전세의 존재 이유, 시세 상승 기대감

 

 

 

 

한국에서 전세가 오랜 기간 유지된 것은 집주인과 세입자에게 모두 이익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무이자로 전세금을 조달해 집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전세의 전제 조건은 집값 상승이다. 집주인이 부담하는 보유세, 취득세, 수리비, 감가상각을 고려하면 이론적으로 전세가격이 매매가보다 높아야 한다. 그런데도 집주인이 매매가의 50% 정도의 보증금을 받는 것은 미래의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임대인은 전세자금을 레버리지로 활용, 시세상승을 추구하고 임차인은 전세를 이용함으로써 주거비용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시세상승 기대가 작아질수록 매매가와 전세가격이 비슷해진다. 전세사기가 발생한 빌라, 오피스텔 등 서민주택의 전세가와 매매가이 비슷한 이유이다. 일부 초소형 도시형 생활주택의 경우, 전세가가 매매가격보다 더 높다.

 

반대로 가격 상승 기대감이 높은 주택일수록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커진다. 그 극단전인 예가 재건축 아파트이다. 재건축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20~30%에 불과하다. 10억원 아파트 전세가격이 2억이라며 집주인이 엄청난 손해이지만, 집주인은 재건축을 통한 시세 차익을 기대하면서 낮은 전세가를 감내한다. 재건축이 가능한 성수동의 소형빌라들은 전세가 2억원에 불과하지만, 20억이 넘는 거액에 거래됐다.

 

 

 

◇문재인 정부가 몰락시킨 서민주택시장

 

전세 사기극과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주택은 빌라,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다가구 주택 등 3억원이하 서민 주택이다. 이들 주택은 정부 주택 정책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다. 품질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가격 상승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파트는 인허가에서 분양, 준공까지 정부의 통제하에 품질이 관리되고 있다. 반면 서민 주택은 품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주차장 놀이터 등 편의시설이 거의 없고 분양절차, 가격에 대한 규제도 전무하다. .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문재인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와 종부세 강화정책이다. 2020년 7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됐다.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무주택 자격 유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3억원이하 서민주택을 소유해도 유주택자로 취급한다. 10억,20억 아파트에 전세를 살면 무주택자이다. 분양가 상한제로 빌라 등 저가주택의 매매 수요는 더 위축됐다. 실수요가 전무한 가운데 거의 유일한 수요자는 임대사업자이다. 성창엽 주택임대인 협회장은 “문재인 정부의 종부세 폭탄, 대출 규제로 임대사업자를 존폐위기로 몰아넣었다”면서 “정책 실패가 초래한 서민주택의 수요공백을 틈타 전세사기조직이 활개를 쳤다”고 말했다.

 

 

 

◇전세 포플리즘이 초래한 비극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세 대출 증가율, 자료=김상훈 의원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세 대출 증가율, 자료=김상훈 의원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 제공: 조선일보

 

 

 

전세보증금 미반환 리스크 탓에 저가 주택은 보증부 월세, 고가 아파트는 전세위주였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전세가 서민들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판단, 전세대출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면서 저가주택의 전세화를 촉발시켰다.

 

2014년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전세금의 80%까지 대출해주는 ‘전세금 안심대출’이 도입되면서 전세대출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전세금 대출은 48조6000억원(2017년)에서 170조5000억원(2021년)으로 3.5배 급증했다. 특히 20대의 전세 대출이 3조6000억원에서 28조1000억원으로 7.8배나 늘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72%가 20‧30대이다. 특히 상당수 피해자는 전세대출을 받아 계약했다가 전세금을 떼였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 서민에게 재앙이 된 것이다.

 

특히 정부가 2018년 2월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80%까지 해주던 빌라의 전세 보증을 100%로 상향조정하면서 저가 주택의 전세화가 급진전됐다. 저리의 전세대출로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는 계약이 붐을 이뤄졌다.

 

저가주택과 달리, 아파트 등 고가주택은 전세금이 치솟고 대출도 제한되면서 보증부 월세가 급증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전세대출 확대 정책은 전세 과소비를 초래 전세가격 상승과 전세를 낀 갭투자를 촉진시켜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

 

2020년 임대차 3법 도입을 전후로 전세가격이 폭등하면서 전세대출과 보증대상이 계속 확대됐다. 전세가 폭등에 따른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다. 국토부는 2020년 9월 다가구주택의 임차인도 다른 전세계약 확인 없이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완화했다. 올해 1분기 보증사고의 49.3%가 다가구주택에서 발생했다. 최민섭 호서대 부동산 자산관리학과 교수는 “가구별로 등기가 돼 있는 다세대 주택과 달리, 다가구 주택은 여러채가 입주해 있어도 한 채로 등기가 돼 있어 세입자가 전체 보증금 규모와 순위를 파악하기 어려워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면서 “서민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서민들에게 재앙이 될 수 있는 만큼, 관련 제도의 꼼꼼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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