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산문
<불친절한 노동> 글 중에서 ...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는
평소 잘 들어오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무 불행하고 고된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가족이 생기면 그 불행이 개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번져나가므로
여기에서 그 불행의 끈을 자르자고 했다.
절을 알아봐줄 테니 출가를 하는 것도 생각해보라고도 덧붙였다.
당시 나는 그길로 신경질을 내며 아버지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과 삶에 지친 날이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설핏 가난을 느낄 때면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다.
근대 이후 인간이 해야 하는 노동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관념적으로는 꽤나 신성한 가치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누가 해도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내는 노동의 직종들은 한없이 천대받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