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기획] "폭탄고지서 겁난다"… 폭염보다 무서운 전기·기름값 공포
최상현 기자
입력: 2023-08-08 16:24
역대급 더위에 8·9월 전기료 걱정
유가 배럴당 100달러 전망도 솔솔
물가 인상에 소상공인 부담도 가중
[기획] "폭탄고지서 겁난다"… 폭염보다 무서운 전기·기름값 공포
서울에서 3인 가구로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모(47)씨는 "요즘 에어컨 틀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전기요금이 인상된 후 6월분 관리비가 크게 올라간 것을 경험한 터라 역대급 폭염이라는 8·9월에 전기료가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 앞선다. 한씨는 "큰 에어컨은 안 틀고 작은 에어컨으로 버텨보려고 하는데, 그래도 작년보다 관리비가 훨씬 많이 나오지 않겠냐"고 했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정모(32)씨는 일찌감치 자동차 기름을 가득 채웠다. 휘발윳값 오르는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정씨는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겁난다. 마음 같아선 말통을 구해다 기름을 쟁여두고 싶다"고 말했다.
낮 최고 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면서 서민의 생활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올해 7월까지 근원물가 상승률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고, 전기요금이 지난해 2분기부터 5개 분기 연속으로 인상한데다 그나마 상승이 덜했던 유가도 오르고 있어서다.
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7월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 누계 상승률은 4.5%로 전년(3.7%) 대비 0.8%포인트 뛰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7월(6.8%)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9년 1~7월(4.2%)보다도 높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곡물을 제외한 농산물, 도시가스, 석유류 등 품목 57개를 뺀 401개 품목으로 작성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다. 계절적인 요인이나 일시적인 충격에 의한 변동성이 심한 항목을 제외해 물가변동의 장기적 추세를 파악하기 용이하다. OECD 방식의 근원물가지수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도 올해 7월까지 3.8%로 1998년 1~7월(5.6%)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최근 들어 국제 유가도 가파르게 올라 물가에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8일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리터)당 1695.06원으로 전날보다 7.2원 올랐다. 지난달 9일 1570원에 비해 약 120원이 오른 것이다.
원유 가격이 100달러를 돌파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7일(현지시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영국 브렌트유 가격은 각각 배럴당 81.94달러와 85.34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분기 70달러 중반에서 형성됐던 브렌트유 가격은 7월 중순부터 80달러를 넘어섰다. 프랑스 투자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SG)은 브렌트유가 내년에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고, 스탠다드차타드 은행도 98달러로 기존 전망을 상향조정했다.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국제 유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우디에서 네옴시티·엑스포 등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 재정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유가를 더 올리려고 할 것"이라며 "당분간 유가가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가가 상승함에 따라, 이달 말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중료도 불투명해졌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상반기에만 40조원에 육박한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유류세 인하 조치를 종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인하 조치가 종료되면 휘발유는 ℓ당 205원, 경유는 212원 오른다.
조만간 휘발유값이 리터당 평균 1700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휘발유값이 2000원에 육박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달 중순쯤 인하 조치 종료 여부를 발표할 것"이라며 "최근 유가 동향 등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불볕 더위속에서 전기요금도 서민과 소상공인에 부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기료는 전년 동월 대비 25% 올랐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전기료가 지난해부터 올 2분기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상승했고, ㎾h당 총 40.4원이 올라 인상률은 39.6%에 달한다"며 "당장 냉방비 폭탄을 피하기 위한 근본적인 에너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