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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을 무시한 ‘(매우) 특수한 작전’의 폐해
필리프 레마리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승인 2022.08.31 19:57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6개월 후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설득’하고자 개시한 ‘특수작전’은 우크라이나에는 물론이고 블라디미르 푸틴과 푸틴 정권, 그리고 러시아에도 재앙이 돼버렸다. 게다가, 이 재앙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분쟁이 완전히 종식되거나 부분적으로 봉합되더라도 그 영향은 이어질 것이다.
모래 주머니에 뒤덮인 페트로 사하이다치니(1570~1622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의 기념물, 크이우에서 막심 팀시크 촬영
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인 러시아의 대통령이 어떻게 이 전쟁에 확신을 가졌을까? 러시아는 거대한 정보기관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정교한 국가이며 심지어 푸틴 본인도 정보기관 출신이 아니던가? 우크라이나를 ‘탈 나치화’하고 ‘집단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푸틴의 주장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체 러시아의 무력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파괴자를 다시 사랑할 것이라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물론 어떤 노선을 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푸틴의 이런 ‘주사위 던지기’ 식 결정이 초래한 부정적인, 아니 끔찍한 결과를 말하자면 끝이 없을 듯하다. 많은 분야가 후퇴하고 실의에 빠졌으며 낭비와 재앙을 겪고 있다. 애초의 예상(혹은 기대)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이 끔찍한 결과들을 한 번 열거해 보자. 이 목록을 보완 및 비평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과거로 회귀한 ‘서구’
2019년, (당시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튀르키예와 갈등을 겪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가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의 나토 탈퇴를 고려중이었다. 그런데,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대서양 동맹을 각성시켰다.
결국 푸틴은 유럽에서 발을 빼려던 미국을 다시 유럽으로 끌어들였다. 나토의 축소를 원하던 푸틴의 바람과는 반대로, 더욱 확대됐다. 지난 7월 1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나토는 여전히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동맹”임을 재확인하는 최종 선언문을 채택하고 동맹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심지어 러시아의 ‘특수작전’은 동서로 분열됐던 나토를 재결합시켰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충격에 빠진 30여 개 회원국은 ‘대부’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1)
새로운 형태의 ‘냉전’
세계는 ‘냉전의 부활’을 맞이했다. 2000년대 초 이후 사라진 듯했던 ‘냉전’과 유사한 상황이 된 것이다. 다만 과거의 냉전과 다른 점은 양 진영이 더 이상 동등하지 않다는 것과, 새로운 맞대결의 규칙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토 또한 부활했다. 나토는 (상호 방위를 규정한 나토 헌장 5조의 확대와 재적용을 통해) 정치적으로 부활했으며, 군사적으로도 (회원국이 침략을 받으면 ‘고강도’ 분쟁에 대비해 다른 회원국들이 군대를 동원해 개입) 부활했다. ‘서구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수호자 미국’과 거리를 두려던 국가들의 노력은 일단 물거품이 됐다. 프랑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전통적인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타격’에 공포를 느낀 나머지 나토 가입 의정서에 서명했다.(2) 이로써 나토는 이미지와 영향력을 강화했으며, 거의 모든 유럽연합(EU) 회원국을 흡수했다. 보스니아, 조지아, 몰도바 그리고 언젠가는 우크라이나도 나토에 합류할 전망이다.
모두가 기피하는 새로운 공공의 적, 러시아
마드리드에서 열린 정상회의 마지막 날, 나토는 새로운 로드맵을 채택하고 러시아를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했다. 러시아는 이를 러시아를 향한 나토의 ‘공격성’ 혹은 ‘제국주의적 열망’으로 일축했다.
핀란드의 ‘변절’로 인해,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과 공유하는 국경이 1,300km 연장됐다. 비회원국인 발트해 연안국, 폴란드, 루마니아, 우크라이나는 수년 전부터 무기를 공급받는 형태로 나토의 ‘안전 보증’ 대책을 누려왔다. 앞으로는 핀란드도 동일한 혜택을 누릴 것이다. 최근 몇 달 사이, 나토는 항공 지원을 강화했으며 우크라이나 인접국에 나토 연합군 6개 여단을 배치했다.
최근 몇 달 사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펼친 군사작전은 연이은 실패를 경험했다. 이로써 한때 세계 2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러시아군의 한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국제법을 무시한 러시아군의 특수작전
러시아군은 아프가니스탄, 체첸 혹은 시리아 파견 시절부터 ‘잔혹성’, 불균형적인 작전, 국제법을 무시하는 행동(주민 학살, 민간인 폭격 등)으로 유명했다. 러시아의 이번 ‘특수작전’은 그런 러시아군의 이미지가 사실임을 입증했다.
푸틴은 전략사령부를 경계태세에 돌입시키고 발트해의 러시아 군항 칼리닌그라드 주변과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벨라루스에 핵무기 운반수단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핵무기를 내세워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국가들을 위협하는 위험한 선동이다.
국제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고립된 러시아는 중국, 인도, 일부 근동 국가 및 아프리카와의 무역 확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세력 규합에 나선 미국
나토는 마드리드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정식 훈련을 받은 신속대응군(NRF)을 4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늘릴 것을 결정했다. 실질적인 병력 증강에는 시간과 재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목표 수립 자체에 의의가 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럽 9개국 소재 미군 기지의 병력도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3)
● 나토가 주도하는 국방 예산 증액 경쟁과 동맹국 간 ‘상호운용성’ 향상을 내세운 한 ‘표준화’ 강행군의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의 무기 산업이다.(4)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산 무기는 항상 미국산 무기에 밀렸다.
●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은 나토군 주둔비용 분담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산 무기 구매 압력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에 나토를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마드리드에서 채택된 전략 개념은 일단 중국의 위협을 위험한 ‘체제적 도전’으로 언급하는데 그쳤다.
세계 경제 위기 심화
최근 몇 개월간 유럽과 미국이 6차례에 걸쳐 채택한 대(對)러시아 제재는 침략국 러시아의 경제를 옥죄었으며, 세계 에너지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또한 식료품 가격을 상승시켰다. 가파르게 치솟은 인플레이션으로(5) 많은 국가의 경제와 사회적 균형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 미국 남부 주들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정치적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전쟁이 벌어지자 해상운송 비용이 급등했다. 항구가 봉쇄되자 수출이 막힌 곡식들은 썩어나가고 씨앗과 식료품 부족 현상이 벌어졌다. 근동지역과 아프리카는 심지어 기근의 위협을 받고 있다.
반면 전쟁 모리배들(자국 지도자들이 주도한 제재가 낳은 가격 상승으로 새로운 시장에서 이윤을 올리는 미국과 유럽의 석유 및 곡물 생산 기업들)은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국민은 전쟁을 피해 이웃 국가, 심지어 서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피신했다. 이 탈출 행렬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점령이 불러온 공포와 파괴의 규모를 생생히 보여준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앞으로 우크라이나 분쟁 청산과 국가 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요원해진 ‘유럽의 자주국방’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상황은 장폴 팔로메로스 장군의 설명처럼(‘세 당 레르(C’est dans l’air)’, <France 5>, 2022년 6월 29일 방영)(6) “나토의 유럽화”인가 아니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의 발언처럼 “유럽의 나토화”인가? 노르웨이 국적의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유럽인답지 않게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리더십’에 재차 경의를 표했다.
여하튼, EU 의장국(2022년 1~6월) 프랑스의 노력에도 ‘유럽의 자주국방’은 조용히 수그러들었다. 재원 확보, 훈련, 재건과 같은 실질적인 규모와 역량으로 축소됐다. 이로써 오랜 기간 유럽의 진정한 자주국방은 요원해졌다.(7)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또 다른 여파는 독일의 야심찬 재무장 추진이다. 독일은 지금까지 특히 무역관계를 고려해 오랫동안 러시아에 타협적이었으며 나치 정권 패배 이후 군사적 신중함을 유지해온 국가였다.(8)
푸틴에게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 물에 빠진 나토를 구해주게 된 것? 러시아의 국경 확장에 적대적인 이 동맹을 재활성화한 것?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자신이 벌인 ‘특수작전’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론을 상대로 잔인한 침공의 희생자인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거정신을 대변”했다.
유엔 대표부와 미국 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제라르 아르노는 7월 3일 시사주간지 <르푸앙(Le Point)>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 입장에서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러시아를 철천지원수로 여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필리프 레마리 Philippe Leymari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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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은 이 공격을 실제상황이라고 믿었던 유일한 국가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대대적인 군사 ‘훈련’을 벌인다고 믿었다.
(2) Philippe Descamps, ‘La neutralité, une arme pour la paix(한국어판 제목: 중립화, 평화를 위한 무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4월호.
(3) 20여 년 사이에 미군 병력은 꾸준히 감소했다. 미군은 현재 6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증강될 예정이며 미 해군 프리깃함이 추가로 스페인에 주둔할 예정이다. 또한 미 육군 5군단 사령부가 폴란드에 상시 주둔할 예정이다.
(4) 그런데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무기 지원 속도가 빨라지면서 미국 무기 산업은 몇 달 전부터 과열 상태에 이르렀다.
(5) 2023년 예상 인플레이션율은 프랑스 6%, 독일은 유로존 국가 평균인 8%다. 발트해 연안국에서는 20%까지 치솟을 예정이다.
(6) 장폴 팔로메로스 장군은 프랑스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후 노퍽에 위치한 나토 변혁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7) 아이러니하게도 EU가 우크라이나의 자체무장을 돕는데 사용하고 있는 예산은 ‘평화 촉진’ 예산이다. 이 예산은 전쟁자금 지원에 할애된 예산이 아니다!
(8) Philippe Leymarie, ‘Faut-il applaudir le réarmement allemand?, 독일의 재무장을 환영해야 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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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레마리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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