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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댐 파괴 흑역사, 물로 흥한 자 물로 망한다

 

 

박영서 기자

입력2023.06.23. 오전 1:08  수정2023.06.25. 오후 6:11 기사원문

 

 

 

 

 

카호우카댐 폭파, 우크라-러 상대방 소행 주장

 

대체댐 건설에 5년, 물을 채우는데만 3년 걸려

 

중일전쟁때 화원구제방 폭파로 90여만명 사망

 

한국전쟁때 중공군 고립시키려고 화천댐 폭파

 

댐 폭파는 자국민에 큰 피해 입히는 환경 재앙

 

 

 

댐이나 제방은 수자원을 확보하고 홍수를 방지하며 전력을 생산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선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카호우카 댐 붕괴가 그 예다. 이번 댐 붕괴는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최악의 생태계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역사를 보면 총 아닌 물로 싸웠던 전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는 인간이 고통과 파괴를 얼마나 쉽게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카호우카 댐 붕괴, '환경 재앙' 초래하나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州) 카호우카 댐 주변 주민들은 지난 6일(현지시간) 새벽 3시경 큰 폭발음에 잠을 깼다. 이어 격렬한 물의 포효 소리를 들었다. 손상된 댐에서 저수지 물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노도와 같은 물 줄기는 순식간에 주택과 농지를 집어삼켰다.

 

드니프로강 하류 지역에 있는 카호우카 저수지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담수 저수지다. 우리나라 최대 호수인 소양호의 약 6배 물을 담은 초대형이다. 이런 댐이 부분 붕괴되면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미 CNN방송에 따르면 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의 집계를 합산하면 최소 45명이다. 동시에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번 댐 붕괴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추정한 손실은 43억달러(약 5조5000억원)에 달한다.

 

댐을 점령해온 러시아측은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으로 댐이 무너졌다고 주장하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을 저지하기 위해 일부로 댐을 폭파했다고 맞서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 등을 인용해 러시아가 댐 내부 통로에 폭발물을 심어 댐을 파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으나 현재로서는 누구의 소행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누구의 소행이든 댐 폭파는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필사적인 작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가가 너무 크다. 향후 심각한 환경적 후유증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댐 건설에는 최소 5년이 걸리고 10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추정한다. 저수지를 다시 채우려면 3년이 더 걸릴 것으로 봤다. 하지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댐 건설을 시작할 수 없다. 이러다간 우크라이나 남부가 '사막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지역은 초원 기후다. 땅 자체는 비옥하지만 건조하고 강우량이 적다. 농업에 적합한 땅은 아닌 것이다. 소비에트 시대 추진된 대규모 관개가 이 땅을 곡물들이 잘 자라나는 농지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1950년대 건설된 카호우카 저수지는 이 곳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번에 댐이 터지면서 예전과 같은 관개는 불가능해졌다. 물이 부족한 원래의 대초원 지역으로 돌아갈 위험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최악의 수공(水攻) '황허 대홍수'

 

이렇게 카호우카 댐 붕괴 피해는 막대하지만 85년 전 중국에서 일어났던 참사와 비교해보면 '새발의 피'다

 

황허(黃河)는 토사가 많이 흐르는 강이다. 토사가 쌓이고 쌓이면 주변 농토보다 강바닥이 더 높은 천정천(天井川)이 된다. 주변 지형이 평야 지대로 바뀌는 뤄양(洛陽)께부터 이런 현상이 본격화된다. 제방으로 막아야 물이 넘치지 않는다. 강둑이 터져버리면 대홍수로 아수라장이 될 수 밖에 없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일본군은 파죽지세였다. 9월에 중국 북부 전역을 장악했다. 11월에는 최대 도시 상하이(上海)가 떨어졌고 12월에는 수도 난징(南京)까지 점령됐다.

 

다음해 5월 일본군은 쉬저우(徐州) 대회전에서 국민당 군을 패퇴시켰다. 일본군은 패주하는 국민당 군을 추격하며 허난(河南)성의 고도(古都)인 카이펑(開封)으로 진군했다.

 

6월 6일 일본군은 카이펑을 점령했고, 곧 정저우(鄭州)로 향했다. 교통 요충지인 정저우가 점령되면 다음 차례는 우한(武漢)과 시안(西安)이 된다. 우한에 총사령부를 두고 있던 장제스((蔣介石)는 정저우를 사수하라고 지시했다.

 

1938년 6월 9일 오전 국민당군 공병대가 정저우 근방 화위안커우(花園口)의 제방을 폭파했다. 그러면서 일본군 공습 때문에 둑이 무너졌다면서 책임을 일본군에게 뒤집어 씌웠다. 신문들은 일제히 일본 침략자들의 잔학 행위를 비난했다. 국민당 정권은 전투에는 무능했지만 잘 하는 것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거짓말'이었다.

 

황허의 누런 물이 허난성의 평야지대로 쏟아져 나왔다. 위세가 대단했다. 허난성을 쓸고 내려온 거대한 물줄기는 안후이(安徽)성 북쪽을 지나 화이허(淮河)와 합류했다. 물에 잠긴 면적이 남한 면적의 절반을 웃돌 정도였다.

 

일본군 14사단과 16사단은 광활한 '바다'에 빠졌다. 서진(西進)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이 이 두 사단을 구출하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약 90여만명이 사망하고 1250여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비옥했던 경작지는 완전히 망가졌다. 이때 부자들은 헐값에 땅과 사람을 사들여 더 큰 부자가 됐다.

 

그렇다면 장제스의 목적은 달성되었을까. 일본군은 정저우를 통하지 않고 다른 루트를 이용해 우한에 도달했다. 그해 10월 26일 일본군은 한커우(漢口)와 우창(武昌)을 점령했고 다음날 한양(漢陽)까지 접수하면서 우한 삼진(武漢三鎭)을 모두 손에 넣었다.

 

결국 제방 폭파는 실패한 전략이 됐다. 우한 전투 개시를 약 3개월 지체시켰을 뿐이었다. 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었다. 적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보다 수배나 되는 목숨을 자국 정부가 앗아간 꼴이 됐다.

 

 

 

◇기네스북에 오른 미군의 화천댐 폭파

 

전쟁 중에 댐을 폭파하는 일은 한국전쟁 때에도 있었다. 1951년 5월 1일, 동해 상에 정박 중이던 미 항모 프린스턴호(號)에서 195 타격비행중대의 급강하 폭격기 8대가 발진했다. 화천댐을 폭파하기 위해서였다.

 

화천댐은 일제가 군수공장에 전기를 공급할 목적으로 1939년 착공해서 1944년 완공했다. 댐 건설로 거대한 호수가 생겼다. 지역 사람들은 이 호수를 '대붕호'(大鵬湖)라고 불렀다. 1973년 소양강댐이 건설되기 전까지 화천댐은 남한 최대 댐이었다.

 

폭격기는 저공으로 비행해 어뢰를 화천댐 호수에 떨어뜨렸다. 목표는 적의 함선이 아니라, 물을 가두어 놓은 댐의 수문이었다. 어뢰들은 물살을 가르며 수문 뒤를 강타했다. 8발의 어뢰 중 7개가 명중했고 그 중 6개가 기폭됐다. 중앙 수문은 완전히 파괴됐다. 엄청난 물줄기가 부서진 수문에서 흘러나왔다. 조종사들은 '장관'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았다. 이는 세계 전쟁사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육지에서 어뢰를 사용한 사례였다. 그래서 기네스북에도 등재돼 있다. 한국전쟁에서도 유일하게 어뢰가 사용된 작전이었다.

 

이날 어뢰 투하가 성공을 거두면서 195 타격비행중대의 애칭은 '타어거'(Tigers)에서 '댐버스터'(Dambusters)로 바뀌었다.

 

수문 폭파로 홍수가 일면서 화천댐 일대에 집결했던 중공군 10·25·27 사(師)는 고립됐다. 미 9군단은 화천 탈환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포위망 탈출에 실패한 중공군은 상당수가 전사하거나 포로가 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투 승리를 기념해 호수의 이름을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했다.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의미다. 이후 이 인공호수는 파로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댐이나 제방을 폭파하면 적군만 수몰되는 게 아니다. 자국 국민에게도 큰 피해를 주면서 대참극으로 이어진다. 이를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보게 됐다. 반복되는 역사다.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이 역사에서 얻은 유일한 교훈이다"라는 헤겔의 격언이 씁쓸하게 떠오른다. 논설위원

 

 

박영서 기자(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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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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