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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대형은행 폐쇄 후폭풍, 어디까지 번지나
[Market Watch]
김성모 기자
입력 2023.03.11 10:54
업데이트 2023.03.11 12:00
미국 캘리포니아 샌드힐 로드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문이 잠긴 모습. 캘리포니아 금융당국은 10일 이 은행을 유동성 부족과 지급 불능의 이유로 폐쇄시켰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샌드힐 로드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문이 잠긴 모습. 캘리포니아 금융당국은 10일 이 은행을 유동성 부족과 지급 불능의 이유로 폐쇄시켰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주 글로벌 증시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매파적(긴축 선호) 발언으로 움츠러들고, 2월 고용보고서 발표와 ‘SVB(실리콘밸리은행) 쇼크’ 등 굵직한 이슈로 출렁였다. 10일(현지시각) 나온 미국 노동통계국의 고용 보고서는, 31만1000명 취업자 수 증가 수치가 예상치(22만5000명)보다 높았지만, 시간당 평균 임금 상승폭은 0.2%로 예상(0.3%)보다 둔화돼 좋고 나쁜 수치가 혼재된 성적표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오는 14일에 나오는 미국 소비자물가(CPI) 지표가 22일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인상 보폭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는 시장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시장에선 SVB 폐쇄 후폭풍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10일 결국 폐쇄된 SVB는 미국에서 파산한 역대 은행 중 2위 규모라는 점에서 금융권 전반과 스타트업 등으로 도미노 위기가 오는 게 아닌지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다음주 꼭 챙겨야 할 세 가지 경제 이슈를 정리했다.
◇①SVB 폐쇄 : 어디까지 위기 번지나
9일 미국 은행주 폭락 사태를 촉발한 SVB는, 10일(현지 시각) 결국 폐쇄됐다. 미국 서부 스타트업 돈줄 역할을 하던 이 은행은 증자에 실패하고 영업장 문을 열지 않으며 불안감을 키웠고, 결국 이날 장중 캘리포니아 금융당국이 SVB 자산을 접수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로 자금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미 캘리포니아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 FDIC는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란 이름의 법인을 세우고 SVB기존 예금을 새 은행으로 옮기고, SVB 보유 자산 매각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미국 16위 은행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문 닫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역대 두 번째 큰 규모의 은행이 초고속으로 몰락하자, 투자자들은 이 위기가 어디까지 번질지 주목하고 있다.
이 은행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연준의 기준금리 고공 행진이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기준금리가 계속 올라 기술기업들 돈줄이 말라버리면서 SVB로 신규 유입 자금이 끊긴 것이다. 이에 SVB는 예금 감소와 유동성 부족을 메우기 위해 현금화가 용이한 채권을 매각하기로 했다. 결국 미 국채가 대부분인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매각해, 18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볼 것이란 발표가 9일 나오며 위기 경고등이 켜졌다. 발표 직후 이 은행 주가는 60% 이상 폭락했고, 고객들 예금 인출이 가속화됐다. 이날 SVB는 증자 계획이 무산되며 회사 매각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캘리포니아 금융당국이 인수자를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칼을 빼들며 위기를 정리하고 나섰다.
실리콘밸리 대형은행의 갑작스러운 파산을 두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블랙스완’(예상하기 어렵지만 영향력이 큰 사건)이란 해석도 등장했다. 에레즈캐피탈의 마이클 베네즈라 매지닝 파트너는 “이번 사태는 마치 벽돌로 얻어맞은 느낌이 들 정도”라며 “나는 이번 사건을 ‘블랙스완’으로 설명한다”고 보스톤글로브에 말했다.
일단 미국 당국은 과도한 불안 심리를 차단하려는 모양새다. 재닛 앨런 재무장관은 연준 등 관계 기관과 만나 대책을 논의하며 “은행 시스템은 탄력적이며 금융당국이 실리콘밸리 은행으로 인한 불안을 처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은행 시스템은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도입한 스트레스 테스트 등 개혁 조치 덕분에 10여년 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도 “SVB 사태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지역은행 전체의 위기로 보면 안 된다. 은행 업계가 유동성 경색이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 불안감은 상당한 상태다. 특히 미국 서부 스타트업계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SVB가 미국 테크·헬스케어 벤처기업 등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었는데, 재무 구조가 열악한 스타트업의 경우 자금줄이 막히며 자칫 연쇄 도산 사태로 번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예금자 보호 한도인 25만 달러 이상의 예치금은 묶이고 전액 돌려받는다고 해도 상당기간 자금 융통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기가 앞으로 현실화할지,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보폭에까지 이번 위기가 영향을 줄지가 추후 관전 포인트다.
◇②미국 물가 : 2월 물가, 금리 인상 보폭 어떻게 될까
지난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6.4%(작년 동월 대비)를 기록했다. /뉴시스
지난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6.4%(작년 동월 대비)를 기록했다. /뉴시스
다음주 나올 경제 지표 하이라이트는 미국의 2월 소비자 물가다. 파월 의장은 8일 하원 청문회에서 “(3월 기준금리 결정을 좌우할) 중요한 데이터가 남았다. 이 데이터를 주의 깊게 분석하겠다”고 했다. 10일 발표된 미국 고용 보고서와 14일 예정된 소비자물가 등이 미국 기준금리 인상 수준을 결정할 핵심 지표란 뜻이다. 월가 예상치에 따르면,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쯤 상승하고, 전월 대비로는0.4% 정도 오를 전망이다. 이는 1월 상승률 6.4%, 0.5%보다는 둔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 물가상승률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보다는 전월 대비 추이를 눈여겨보라고 조언한다. 작년에 이미 물가가 많이 오른 상태라, 기준점이 이미 높아진 상태에서 작년 대비 증가폭이 더 커지는 건 쉽지 않기 때문(기저효과)이다. 만약 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전월대비로는 0.1%포인트만 떨어진 0.4% 정도로 나오면, ‘끈적한 물가(sticky inflation)’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금리 고공 행진에도 물가 상승률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고 버틴다는 뜻이다.
미국에선 소비자물가 외에도 주요 지표 발표가 줄줄이 이어질 예정이다. 15일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나온다. 이 지수는 제조업자가 판매한 상품 가격의 변동을 보여주는, 생산자 입장에서 측정한 물가다. 지난 1월 생산자물가 지수는 전월 대비 0.7% 올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0.4%)를 상회했다. 2월 생산자물가 지수는 0.3%로 예상돼 지난달보다는 크게 떨어질 것으로 시장은 내다보고 있다. 이날 미국 소매판매, 산업생산 지표도 함께 나올 예정이다. 17일에는 미국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가 나온다. 향후 경기에 대한 전망을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 2월 소비자기대지수는 62.3으로 나와 전월(62.7)보다 약간 떨어졌다.
◇③유럽 금리 : 향후 금리 인상 보폭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달 2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ECB는 기준금리를 3.0%로 0.5%포인트 올렸다. 이번달에도 0.5%포인트 인상이 유력하다. /로이터 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달 2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ECB는 기준금리를 3.0%로 0.5%포인트 올렸다. 이번달에도 0.5%포인트 인상이 유력하다. /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중앙은행(ECB)은 오는 16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 보폭을 결정한다. 다만 0.5%포인트 빅스텝이 거의 기정사실화된 상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 5일 스페인 일간 엘코레오 인터뷰에서 “0.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이달 이후 금리 전망이 어떻게 될지가 보다 관심사다. 네덜란드계 은행 ING는 지난 8일자 분석 보고서에서 “ECB가 오는 5월과 6월에 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다가 금리 인상 사이클을 멈출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