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기획] 대형학원 거짓·과장 광고 엄벌… `불공정 수능`에 칼 빼든 尹
김미경 기자
입력: 2023-06-19 17:42
작년 사교육비 지출 30% 증가
尹정부, 공교육 활성화에 초점
출제기법 고도화 등 개선 계획
"물수능 조장 의도 아냐" 일축
이규민 평가원장 책임지고 사임
윤석열 대통령의 '공정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발언이 낳은 파장이 사교육과의 전면전으로 확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집권 2년차를 맞아 수능의 변별력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활용된 이른 바 '킬러 문항'(고난도 시험문제)을 배제하고, 공교육에 포함된 교과 과정 중심으로 난이도를 조정하는 것으로 사교육 개혁의 기치를 올린 것이다.
19일 정치권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에 수능 킬러 문항과 관련해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갖고 장난 치는 것"이라며 "수십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고 강도 높은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킬러 문항들이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도록 조장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게 윤 대통령의 판단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당시 발표한 120대 국정과제에는 '사교육 경감'이 포함돼 있다. 인공지능(AI) 학습시스템과 메타버스를 활용한 맞춤형 교육과 학습으로 사교육 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사교육은 교육격차가 사회적 격차로 이어지는 양극화 발생요인이 될뿐 아니라 과다한 사교육비 부담이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힌다. 교육부와 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사교육비 규모는 지난 2007년 20조400억원에서 지난해 25조9538억원으로 29.5% 증가했다. 학생수가 줄었는데도 사교육비 총액은 늘어난 것이다. 더욱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세는 더욱 뚜렷하다. 2007년 월평균 22만2000원이던 1인당 사교육비는 지난해 41만원으로 늘었다.
윤 대통령은 수능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구조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교육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교육개혁 관련 보고를 받으면서 보고내용에 포함돼 있지 않았던 수능과 사교육 개혁을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 장관이 윤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언론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수능 난이도 조정에 초점이 맞춰진 것을 경계하고 있다. 공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사교육 여부와 상관없이 공정하게 수능을 치를 수 있도록 하라는 의도가 퇴색되고 '불수능이냐 물수능이냐' 논란으로 흐르는 게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수능 난이도 논란'이 벌어진 것에 "교육부 수장인 제 책임이고 국민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문제를 낸다는 건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오래 있었음에도 교육부가 이를 해결하지 못해 방치한 점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장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일찍이 (수능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교육부가 관성적으로 대응하며 근본적 해법 못 내놓은 것 같다"고 했다. 당정은 이날 올해 수능부터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는 '수능 개선' 외에 일부 대형 학원의 거짓·과장 광고에 엄중 대응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실상 대형학원에 대한 선전포고다. 교육부는 윤 대통령의 '공정 수능 지시 불이행'과 관련해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로부터 복무감찰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16일에는 교육부 전 대입담당 국장 A씨를 대기발령 하기도 했다. 교육부가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감사하겠다고 밝힌 이후 이규민 평가원장도 이날 전격 사임했다. 이 원장은 "지난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며 "오랜 시간 수능 준비로 힘들어하고 계신 수험생과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또 "2024학년도 수능의 안정적인 준비와 시행을 위한 것"이라며 "평가원은 수능 출제라는 본연의 업무에 전념해 2024학년도 수능이 안정적으로 시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에 이어 당정이 사교육에 칼을 뽑아들면서 대형 학원들과 '일타 강사'로 불리는 유명 강사진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학교마다 교육과목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는데 공교육 과정으로 범위를 한정한다고 공정한 수능이 되겠냐는 문제제기와 수능 5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섣부른 변화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다. 수능 난이도 조정이 사교육 경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2011학년도 수능부터 EBS 수능 교재와의 직접 연계율을 70%로 대폭 인상했지만, 정책 시행 초기에만 반짝 사교육비 감소가 있었을 뿐 결국 사교육비는 계속 증가했다. 2014년 말 정부가 수능 영어 영역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 체제로 전환하기도 했지만 사교육비는 되레 크게 늘었다. 대학이 수능과 내신 등 성적순 입학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수능 난이도 조정으로 사교육 경감 효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는 게 교육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또 당정이 자율형사립고등학교와 과학고·외국어고 등을 존치하기로 한 것은 사교육 경감과 상반된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