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美SVB 파산 후폭풍] 국내銀 고위험 상품 투자 비중 낮아 `뱅크런` 가능성 없어
입력: 2023-03-13 15:17
강길홍 기자
영업구조 방식 SVB과 큰 차이
대출확대 리스크 등 영향 미미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도 양호
13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 딜러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관련 뉴스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벤처캐피탈 및 기술 스타트업 전문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면서 국내 은행들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일각에선 SVB 파산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에서 촉발된 만큼 국내 은행들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다만 SVB와 자산 운용 형태가 다른 데다, 국내 은행들의 전반적인 건전성 또한 양호한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국내 은행에서 '뱅크런'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13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SVB 영업정지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고객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SVB는 예치금을 주로 미국 장기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다. 하지만 연준이 지난해부터 급격한 금리 인상을 이어가면서 보유하고 있는 채권 가격이 급락하게 됐다. 은행의 투자 손실 소식이 알려지자 예금 인출을 요구하는 고객의 발길이 이어졌고(뱅크런), 결국 미 금융당국이 SVB에 대해 영업정지 조치를 결정했다.
금융당국은 SVB 사태가 국내 은행들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면서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타격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은행 대부분의 영업방식이 SVB 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SVB는 고객 대부분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VC)인 특화 은행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기술기업들에 몰린 데 힘입어 SVB의 총예금은 2021년 한해 86% 급증했다. 지난해부터 연준이 급격한 통화긴축에 나서면서 대출을 상환하려는 기술 기업들이 예금 인출에 나선 것이 SVB 뱅크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와 달리 국내 은행들은 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을 주로 대출에 활용, 고금리 기조의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수신(예금·작년 12월말 잔액 2243조5000억원)은 지난해 107조4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8조7000억원 감소했지만, 은행 기업대출(작년 12월 말 잔액 1170조3000억원)은 104조6000억원 불었다.
국내 은행들이 예대마진(대출금리-예금금리 격차)을 통해 사상 최대 수익을 올렸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는 금리 상승기 투자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를 낳은 셈이다. 국내 은행들도 증시 부진, 채권가격 하락 등에 따른 투자 손실을 피하기는 어렵지만 비중이 크지 않다 보니 비교적 영향이 적었다.
대출 확대에 따른 리스크도 아직까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25%로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시중은행의 경우 영업정지나 파산 등으로 원리금을 지급하지 못할 위험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SVB의 경우 주 고객이 기업이다 보니 예금자보호한도(25만달러)를 넘는 고액 예금이 많았는데,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되면서 뱅크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반면 지난해 1분기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저축성예금 계좌 238만6440개 중 99.5%인 237만4540개 계좌가 상대적으로 소액인 1억원 이하로 집계됐다. 국내 예금자보호 한도가 1인당 50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분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국내 은행 대부분이 SVB와는 영업구조에서 큰 차이를 보여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국내 은행에서 뱅크런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SVB 사태가 최근 정부가 은행권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추진 중인 인가 세분화(스몰 라이센스), 소규모 특화은행(챌린저뱅크) 도입 시도에는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본다. 금융권 관계자는 "특화은행의 위험성이 드러난 상황에서 정부가 새로운 은행 인가를 강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길홍기자 slize@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