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만물상] 독일의 31년 만 무역적자
강경희 논설위원 - 7시간 전
1987년 10월 19일 뉴욕 증시가 하루 새 22.6% 폭락했다. ‘블랙 먼데이’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금리 인상 불안감 등에 주식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겹쳐 난리가 났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 재무장관이 급히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연방은행 본부로 날아갔다. 독일연방은행이 달러 지지를 위해 자본을 투입하겠다고 짧게 성명을 냈다. 수출 대국 독일이 엄청난 무역 흑자로 마르크화를 쌓아둔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물상] 독일의 31년 만 무역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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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독일의 31년 만 무역적자
▶한때 저(低)성장, 고(高)실업으로 ‘유럽의 병자’라 불렸던 독일이 2000년대 중반 되살아난 비결을 취재하러 간 적 있다. 독일의 유력 경제연구소에서 이런 에피소드를 들었다. “독일 대기업들이 노조 대표들을 헝가리 등 인근 동유럽으로 데려가 공장을 보여줬더니 노조가 터무니없이 임금 인상만 요구하던 태도를 누그러뜨렸지요.” 슈뢰더 전 총리가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독일 기업은 노조와 타협해 단위당 노동비용을 낮추면서 제조업 경쟁력을 되살린 덕에 경제를 회생시켰다는 설명이었다. 이 무렵 세계 3위 독일 경제가 세계 1위 미국을 제치고 수출 1위, 무역흑자 1위로 올라섰다.
▶2002년 총선 유세에서 슈뢰더 총리는 ‘독일의 길’을 천명했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우리 경제의 모델로 삼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미국과 거리 두기를 하는 대외 정책을 표방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듬해 슈뢰더 총리,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이라크전에 반전(反戰) 연대를 형성해 부쩍 가까워졌다. 이런 친분을 바탕으로 2005년 슈뢰더 총리는 러시아와 가스관 연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11년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13명의 각료를 이끌고 베를린을 방문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 재정위기 등을 수습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때였다. 미국과는 의견이 대립되고 중국과 부쩍 가까워졌다. 원자바오 총리는 “필요하면 유럽국가의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지원 사격을 했고 에어버스 여객기를 88대 주문하는 통 큰 선물도 안겼다. 슈뢰더 전 총리도, 메르켈 전 총리도 거의 매년 중국을 방문하며 중국과 교역에 공을 들였다.
▶러시아, 중국과 관계에서 경제 실리를 챙기면서 독일의 무역수지 흑자도 몇 곱절 뛰었다. 그러던 독일이 지난 5월 통일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수입액은 급증하고, 중국의 코로나 봉쇄 등으로 수출은 줄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철옹성 독일이 적자를 낼 정도이니 지금 경제 상황이 보통 심각하지 않다. 제조업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로선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