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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우주청장, 오펜하이머보단 그로브스"
고재원 님의 스토리 •
3시간
NASA '명예의 전당' 오른 최상혁 수석연구원
정부 예산 따내고 조직 융합
과학자보다 관료·정치인 부합
깜짝 놀랄만한 기술 나오도록
예산 30% R&D에 쏟아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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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우주청장, 오펜하이머보단 그로브스"
"첫 우주청장, 오펜하이머보단 그로브스"
© 제공: 매일경제
"반세기 가까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해보니 수장은 정치인이 제일 좋더군요.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출중해 조직원을 '원팀'으로 융합하고 정부 예산까지 끌어올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한국 우주항공청에도 그런 리더가 필요합니다."
최상혁 NASA 랭글리연구소 수석연구원(사진)이 지난 15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약 44년간 NASA에서 근무한 그의 경험으로 미뤄 볼 때 우주항공청 수장에는 특정 분야 기술자보다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맨해튼프로젝트 연구개발(R&D)을 이끌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보다 전체 프로젝트를 총지휘한 레슬리 그로브스 대령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 수석연구원은 우주과학계에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68년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오리건주립대로 건너가 석사와 박사 학위를 마쳤다. 1980년 NASA에 들어가 인공위성 센서, 극초소형 분광기, 태양열 로켓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20년 NASA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이는 항공우주 기술 혁신을 이룬 NASA 최고 기술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로, 우주 왕복선의 첫 모델을 제안한 막심 파제 연구원 등 지금까지 겨우 42명만 이름을 올렸다.
이런 그가 보기에 기술자는 우주항공청 수장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 그는 "특정 분야 기술자가 NASA 수장이 되니 문제가 생겼다"며 "본인이 아는 분야의 R&D만 강조했고 예산이나 인력 배치 모두 해당 부문에만 편중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반대로 정치 등 여타 분야 출신 수장은 NASA 조직에 더 좋은 선택이 됐다. 최 수석연구원은 "다른 분야 사람들은 기술적인 백지 상태에서 오다 보니 오히려 조직의 융합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NASA 현 수장인 빌 넬슨 역시 정치인 출신이다. 그는 1979~1991년 6차례 하원의원, 2000년 상원의원을 지내는 등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다. 넬슨 국장은 2021년 NASA 국장으로 선임됐는데,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기술적 기반이 없는 정치인 출신이란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판이 무색하게 넬슨 국장은 NASA 황금기를 이끌고 있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소행성 충돌 프로젝트 '다트' 등 국가 임무에서 모두 최고 성과를 내고 있다.
최 수석연구원이 보기에 기술자가 수장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우주항공청장의 큰 역할 중 하나가 '예산 수호'다. 청장은 정부 부처 간 예산 싸움, 의회의 견제 속에서 조직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넬슨 국장의 가장 큰 역할도 예산 전쟁에 나서는 것이다. 넬슨 국장은 2022년 의회를 설득해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예산을 전액 확보한 바 있다. 미국 의회에서 내년도 예산을 두고 삭감 움직임이 일자 그는 지난 11일 NASA 연례 연설에서 "NASA 예산을 위해 싸우겠다"고 공표했다. 최 수석연구원은 "우주항공청은 향후 예산 싸움도 벌여야 한다"며 "청장은 그런 경쟁을 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우주항공청은 오는 5월 개청을 앞두고 청사 마련 등 준비에 한창이다. 우주항공임무본부장 등 핵심 인재 영입은 인사권을 보유한 청장이 선임된 후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 수석연구원은 "한국에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 많다"며 "그들에게 환경을 마련해주고 열정을 불어넣는다면 무조건 성과는 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청장은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며 "그래야 인재도 모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수석연구원은 우주항공청을 위한 조언을 하나 더 건넸다. 그는 "우주항공청은 NASA가 하던 일을 그대로 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리더십을 갖고 완전히 새 기술을 개발해 NASA에서 '이런 기술이 있다고?'라는 감탄사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매년 예산의 30%가량을 새 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장 자리에 대한 의향을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최 수석연구원은 "나 역시 기술자로서 해야 할 연구가 아직 많다"며 "우주항공청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자문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우주항공청을 설립하고 각종 우주 관련 성과를 내는 등 매우 잘하고 있다"며 "우주항공청에 역량을 결집하고 지원을 이어간다면 수년 후 가시적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