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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오르막길 안 나가" 유튜브 댓글, 민노총 간부 '北교신' 신호였다

 

 

 

입력 2023.05.10 16:44

 

업데이트 2023.05.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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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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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토바이는 오르막길에서 잘 나가지 않네요.”

2022년 8월 오토바이 열쇠 없이 시동을 거는 방법을 설명하는 유튜브의 한 동영상 댓글에 달린 글이다. 평범한 동영상에 달린 댓글이지만 이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을 지낸 김모(48)씨가 북한의 문화교류국 공작원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암호 키 훼손으로 김씨의 보고문 작성과 지령문 수신이 원활하지 않자 북한 문화교류국은 베트남에서 김씨와 접선을 시도했다. 북한 공작원은 지령문으로 김씨에게 접선 가능 여부를 묻기 위해 동영상 제목과 링크를 보냈다. 북한 공작원은 김씨에게 접선이 가능하면 ‘토미홀’이라는 단어를, 불가능하면 ‘오르막길’이라는 단어를 댓글에 넣어서 쓰라고 요청했다. 검찰 관계자는 “겉으로는 아무런 대공 용의점이 드러나지 않는 영상과 댓글이었다. 지령문을 찾지 못했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라며 “유튜브 댓글로 북한 공작원과 통신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광현 수원지검 인권보호관이 1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노동단체 침투 지하조직'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광현 수원지검 인권보호관이 1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노동단체 침투 지하조직'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령문·보고문 114건…국보법 위반 사건 중 최대 규모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 정원두)는 이날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편의제공 등) 혐의로 김씨와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출신으로 총책격인 석모(52)씨, 민주노총 산하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54)씨, 제주평화쉼터 대표 신모(51)씨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1월 민주노총 본부 압수수색 중 석씨가 보관하던 암호키를 확보한 덕분에 90건의 지령문과 24건의 보고문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역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중 가장 많은 지령문·보고문이 확보된 사건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석씨는 간첩 통신으로 불리는 스테가노그래피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게시판 등을 활용해 북한 공작원과 지령문과 보고문을 주고받았다.

 

 

 

 

북한은 석씨에 대해 “20년 넘게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고 표현할 만큼 각별한 사이임을 강조했다. 석씨는 2017년 9월 캄보디아, 2018년 9월 중국, 2019년 8월 베트남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했다. 이들은 접선 방법을 안내한 지령문에 맞춰 접선 장소와 시간뿐만 아니라 ‘계단에서 대기하다가 정각에 손에 들고 있는 생수병을 열고 마시는 동작’, ‘손에 들고 있는 선글라스를 손수건으로 2~3차 닦는 동작’ 등 수신호까지 미리 약속해 비밀리에 만났다. 석씨는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 총 102회에 걸쳐 지령문을 받았으며 또 민주노총 내부 통신망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이 기재된 대북 보고문 등을 전달했다.

 

지령문에 따르면 북한 문화교류국은 ‘본사’, 석씨가 이끄는 조직은 ‘지사’, 민주노총은 지사의 하위인 ‘영업1부’로 지칭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총회장님’으로 표기됐고 석씨는 지사장 자격으로 각종 지령을 받아 민주노총 내 지하조직 구축과 민주노총 간부 포섭 등의 활동을 했다. 석씨는 북한이 지령한 5단계 절차인 ‘친교 관계 형성→사회 부조리에 대한 불만 촉발→사회주의 교양→비밀조직 참여 제안→적극적 투쟁 임무 부여’ 과정을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석씨에 의해 포섭된 김씨는 2017년 9월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했으며 2018년 4월부터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강원조직’의 지사장을 맡아 별도의 조직도 구축했다.

 

 

 

송전망·평택 미군기지 등 국가 주요 시설 정보 수집한 北

 

 북한은 석씨 일당에게 민주노총 내부의 동향 보고는 물론, 민족해방(NL) 계열의 경기동부연합 출신인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 지지와 산별노조 장악 등을 요구했다. 북한은 또 청와대 등 주요 국가기관의 송전선망 마비를 위한 자료 입수, 평택 화력·LNG 저장탱크 배치도와 같은 비밀 자료를 수집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검찰은 석씨의 사무실 PC에서 평택 미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 등 군사시설과 군용 장비에 관한 동영상 자료도 확보했다.

 

북한은 주요 사회 이슈에 맞춰 반정부 투쟁, 반미·반일감정 등을 조장하며 민주노총을 정치투쟁 선동에 동원하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촛불시위와 추모 문화제 등으로 반정부 시위를, 지난해 12월 화물연대 총파업 후에는 대정부 투쟁을 이어가라는 지령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국내 최대 노동단체를 외피로 삼아 근로조건 개선이 아닌 북한 지령에 따른 정치투쟁 등에 집중하도록 주도한 것”이라며 “민주노총에 침투한 지하조직이 저지른 반국가적 범죄의 전모를 철저히 규명해 가겠다”라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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