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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애인에게서 전화가 오고 메이저 리거 김병현은 자본주의의 심장을 향해 중지를 들어 보였다
 
 
 
나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그때부터 갑자기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속에선 씨양씨양, 도요가 울고 있었다
 
 
 
아마 나뭇잎들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던 그런 가을날이었을거다
 
 
 
뉴질랜드에 사는 옛 애인에게서 안부를 묻는 전화가 오고 나는 술에 취해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김병현은 좆만도 못한 未國을 향해 좆이라도 한번 되어보라고 중지를 치켜올렸다
 
 
 
나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갑자기 루이스 세풀베다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이라도 한번 되어보고 싶었다
 
 
 
한번 애인은 영원한 애인이라는 착각 속에 마냥 행복하게 늙어갈 수만 있다면 나도 세상을 향해 보라는 듯이 중지를 치켜올리고 싶었다
 
 
 
도요가 우는 내 마음의 개마고원 분교에 나귀를 타고 게으르게 출근할 수만 있다면 저자거리의 개밥그릇을 향해 감자라도 한 방 먹이고 싶었다
 
 
 
감자만 먹고살아도 행복한 내 마음의 개마고원으로 가고 싶었다
 
 
 
씨양씨양, 도요가 울지 않아도 좋았다
 
 
 
더 이상 연애 소설 같은 건 읽지 않아도 좋았다
 
 
 
옛 애인의 전화 같은 건 더 이상 오지 않아도 좋았다
 
 
 
맑은 정신으로, 걸어서라도 그곳에 당도할 수만 있다면 마로니에 칠엽수 아래에서의 커피 향 같은 달콤한 연애는 아예 없어도 좋았다
 
 
 
그러나 옛 애인에게서 전화가 오고 술에 취해 쓰러져 누운 내 삶을 향해 어느 날 개마고원이 자작나무의 중지를 치켜올렸다
 
 
 
그때부터 내 마음에 개마고원 분교 하나 들어섰다 내가 매일 나귀를 타고 출근하는 개마고원 분교, 억새들 자욱하게 흔들리는 내 마음의 대안 학교
 
 
 
옛 애인에게서 전화가 오고 누군가 세상을 향해 중지를 치켜올렸다
 
 
 
나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속에선 씨양씨양, 도요가 울고 있었다
 
 
 
씨양, 이제는 울지도 않는다
 
 
 
가을이 도저하기 깊어가던 그런 날들 속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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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옛 애인에게서 전화가 오고 메이저 리거 김병현은 자본주의의 심장을 향해 중지를 들어 보였다'
 
작가는 옛 애인에게서 오랜 만에 전화를 받아 상실감을 느끼며 마음이 뒤숭숭해진 상태이다. ('한번 애인은 영원한 애인이라는 착각 속에 마냥 행복하게 늙어갈 수만 있다면'에서 엿볼 수 있다. 또 술에 취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또한 나의 존재 가치를 자본주의의 논리로 무참히 깨뜨리는 세상에 대해 분노가 있는 상태이다.
 
 
 
나는 소중하고 나만의 가치를 가진 특별한 존재인데, 세상은 수 많은 인간 중의 하나로만, 게다가 자본주의는 나를 돈 버는 기계 쯤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지나간 사랑에 아파하고 연연해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리고 시골 분교처럼 소박한 세상이지만 내가 귀하고 주인공 될 수 있는 곳에서 산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작가는 세상을 향해 보란 듯이 중지를 치켜 올리고 싶은 것이다.
 
 
 
이 시는 (처음에 읽었을 때는 좀 표현이 과격하지 않나 싶었는데 읽어볼수록) 오늘의 사회를 살고 있는 인간의 내면을 너무나 잘 짚어내었다고 보여진다.
 
 
 
내 마음 속에서 씨양씨양 도요가 울고 있다는 것은 내 내면의 자아가 나를 누르는 세상에 대해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개마고원 분교는 '나귀를 타고 게으르게 출근할 수 있다면', '감자만 먹고 살아도 행복한', '맑은 정신으로, 걸어서라도 그 곳에 당도할 수만 있다면 마로니에 칠엽수 아래에서의 커피 향 같은 달콤한 연애는 아예 없어도 좋았다' 등의 표현으로 잘 설명되어 있다.
 
 
 
작가가 개마고원이라는 말을 쓴 것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의 가치가 가장 존중받을 수 있는 곳, 그래서 가장 높은 곳인 개마고원이 쓰인 것이다.
 
또, 배경을 '가을이 도저하게 깊어가던 그런 날들' 이라고 했는데, 내면이 성숙하고, 내면을 성찰하고, 내면의 목소리가 울리는 시기로써 가을이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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